[2022결산/지경초] 자동차업계, ‘위기 속 선방’…내수 울고 수출 웃었다

시간 입력 2022-12-13 07:00:01 시간 수정 2023-02-01 17: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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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수 판매 167만대…전년比 4.6% 감소 전망
수출은 지난해 204만대→ 올해 220만대로 7.8%↑
내년 내수·수출·생산 감소…‘상저하고’ 패턴 예상

올해 국내 자동차 업계는 유난히도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반도체 칩이 없어 공장 가동을 멈추는가 하면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볼모로 잡혀 완성차를 제때 운송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여기에 원자재 공급망이 붕괴된 충격도 컸다. 철광석 등 핵심 원자재의 가격이 치솟아 원가 부담이 커진 탓에 업계는 내수가 아닌 수출에 집중하며 수익성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그사이 출고 대란이 심화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계약을 하고도 차를 받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은 노사가 합심해 임단협을 무분규로 빠르게 매듭짓고, 생산 차질을 최소화한 점이다. 그 결과 수출과 생산 부문에서만큼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의 내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현상’으로 인해 내수, 수출, 생산이 모두 줄어드는 ‘트리플 감소’가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위기 속에서도 선방한 국내 자동차 업계가 내년 각종 악재를 뚫고, 다시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수출 날았지만…반도체·원자재 탓에 내수 위축·출고 대란 심화

13일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기아, 르노코리아자동차,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등 국내 완성차 5개사와 벤츠, BMW, 아우디를 비롯한 26개 수입차 브랜드의 내수 판매는 지난해 175만대에서 올해 167만대로 4.6%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이 기간 수출은 204만대에서 220만대로 7.8%, 생산은 346만대에서 360만대로 4%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국내 자동차 업계의 내수 판매가 위축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해를 넘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의 여파로 인해 완성차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완성차에는 1대당 2만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데, 이 중 부품 1개만 없어도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다. 차량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반도체 부품인 전자제어장치(ECU)와 도메인컨트롤유닛(DCU)이 대표적이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지속되는 사이 신차는 계속 쏟아졌지만, 생산이 적기에 이뤄지지 못하면서 백오더(주문 대기) 물량이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원자재 공급망이 붕괴된 점도 직격탄이 됐다. 철광석, 알루미늄 등 완성차 생산에 필수적인 원재료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제조 원가 부담이 가중됐다. 실제로 현대차·기아가 매입한 알루미늄 1톤당 가격은 지난해 말 2480달러(약 323만원)에서 올해 3분기 말 2832달러(약 369만원)로 14.2% 상승했다. 같은 기간 철광석의 경우 149달러(약 19만원)에서 128달러(약 17만원)로 14.1% 하락했지만, 2020년(101달러·약 13만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의 차량 평균 판매가격(ASP)도 지속적인 상승 흐름을 보였다.

국내 완성차 5개사 노동조합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반복하던 파업이 올해 없었던 점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현대차, 기아, 르노코리아차, 한국지엠 노사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무분규로 마무리했다. 쌍용차 노사는 지난해 자구안을 통해 임단협 주기를 3년으로 연장해 올해 임단협 교섭을 하지 않았다. 기아 노조의 경우 핵심 쟁점이었던 평생 사원증 제도 수정을 두고 파업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 협상 끝에 합의를 이루며 노조 리스크를 해소했다.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5개사, 악재 속에서도 실적 개선 이뤄

올해 유례없는 부품난과 원자재난에 허덕이던 국내 완성차 업계는 결국 고수익 차종 중심의 전략을 꺼내 들었다. 경차와 해치백처럼 많이 팔아도 돈이 안 되는 엔트리급 차종 대신 수익성이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등의 비중을 꾸준히 늘렸다. 특히 수익성 방어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내수보다는 수출을 위한 물량을 더 많이 배정했다. 그 결과 출고 대란이 본격화했으며, 현재 제네시스 GV80의 경우 계약 후 출고까지 걸리는 기간이 2년 6개월이 넘어갈 정도다. 

이처럼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국내 완성차 5개사는 올해 실적 개선을 이어갔다. 우선 현대차·기아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올해 3분기 3조원에 달하는 품질 비용을 반영하고도 역대급 호실적을 냈다. 이 기간 현대차·기아의 낙수 효과를 본 현대모비스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5.9% 증가한 576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르노코리아차는 올해 초 사명 변경 이후 최근 XM3 하이브리드를 출시하며 SUV 중심의 체질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11월 KG그룹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한 쌍용차는 SUV 신차 토레스를 앞세워 재기를 노리고 있으며, 한국지엠은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서 트레일블레이저와 차세대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을 필두로 한 ‘투 트랙’ 전략을 가동했다.

지난해 연간 27만대 수준으로 성장한 수입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한 상황이다. 올해 11월 누적 신규등록 기준 1위는 BMW(7만1713대), 2위는 벤츠(7만1525대)로 두 브랜드의 판매 격차는 188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수입차 시장 3위를 굳힌 아우디(1만8761대)에 이어 폭스바겐(1만3113대)과 볼보(1만2618대)는 4위 자리를 놓고 여전히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다.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와 함께 BMW의 프리미엄 소형차 브랜드인 MINI를 포함한 6개 수입차 브랜드가 올해 수입차 ‘1만대 클럽’ 진입이 유력하다. 연간 1만대 판매를 뜻하는 1만대 클럽은 수입차 브랜드의 성공적인 국내 시장 안착과 한 해 실적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완성차 제조사들은 고수익 차종 중심으로 라인업을 빠르게 재편하고, 환율 인상 등을 감안해 내수보다는 수출에 집중하며 수익성 면에서 돌파구를 마련했다”면서 “임단협 무파업 타결은 고무적인 부분이지만, 반도체와 원자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아직 요원해 내년 전략 수립에 있어 다방면으로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 속 ‘상저하고’ 전망…소비자 신차 구매력 약화는 변수

현대차 아이오닉 6.<사진제공=현대자동차>
현대차 아이오닉 6.<사진제공=현대자동차>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4분기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반영해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최근 2.7%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IMF보다 낮은 2.2%로 전망했다. 경기에 민감한 자동차 산업 특성상 부정적인 여건이 조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침체 국면에 빠지고,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면 국내 자동차 업계의 수요와 공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업계의 내년 내수 판매는 166만대로 올해보다 0.6% 감소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수출은 210만대로 4.5%, 생산은 349만대로 3.1% 각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수출, 생산이 모두 뒷걸음치는 ‘트리플 감소’를 앞둔 셈이다. 그동안 수익성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마저 감소세로 전환하면 국내 자동차 업계의 맏형인 현대차·기아는 물론 수출 비중이 높은 중견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올해 11월 말 기준 전체 판매 대비 수출 비중을 보면 쌍용차는 40%로 비교적 낮지만, 르노코리아차와 한국지엠은 각각 69.1%, 85.3%로 절반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수출 의존도가 높다.

내년 국내 자동차 시장은 전형적인 ‘상저하고’ 패턴을 보일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에 따른 경기 침체로 인해 내년 상반기까지 신차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내년 하반기 경기 회복으로 신차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수백만대의 백오더 물량이 풀리면 상반기 내수와 수출 감소분을 일부 상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ST마이크로, NXP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내년에도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를 증산할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경기 침체로 소비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신차 구매력이 빠르게 약화한 점이다. 실제로 자동차 가격 상승과 자동차 할부 금리 급등으로 인해 지갑을 닫고, 신차 구매를 미루는 소비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딜로이트그룹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 국내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의향(VPI) 지수는 85.7로 지난해 9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딜로이트의 VPI는 향후 6개월 이내에 자동차를 구매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의 비율을 추적해 산출한 지수로, 100을 기준으로 강약을 판단한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내년에도 고수익 차종인 SUV와 전기차 중심의 신차 출시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국내 전기차 시장이 올해 처음 10만대 규모로 성장한 만큼 신형 전기차 출시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전기차 판매량은 10만7783대로 전년 동기 대비 79.8% 급증했다. 현대차·기아가 아이오닉5, EV6 등 전용 전기차를 앞세워 시장 전체의 97%를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다만 지난 8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이후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가 지난달 감소세로 전환한 만큼 내년 전기차 수출과 현지 판매 전략에 변화를 줄지 여부가 주목된다.

더 뉴 메르세데스-AMG EQS 53 4MATIC.<사진제공=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더 뉴 메르세데스-AMG EQS 53 4MATIC.<사진제공=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한편 내년에는 국내 전기차 시장의 대중화와 함께 양극화도 심화할 전망이다. 환경부는 올해 국내 판매 가격이 5500만원 미만인 전기차에 전기차 구매 보조금의 100%를, 5500만원 이상~8500만원 미만 전기차에는 50%를 지급하고 있다. 8500만원 이상 전기차에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기아가 가격 경쟁력이 높은 보급형 전기차를, 벤츠와 포르쉐가 1억원 이상의 고가 수입 전기차 시장을 독식하는 양극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폭스바겐, 폴스타와 같은 수입차 브랜드가 가성비를 갖춘 다양한 전기차를 국내에 선보이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는 만큼 향후 국내 전기차 시장의 판도가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국내 자동차 산업은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수요 감소 영향으로 수출과 생산이 소폭 감소하고, 내수는 올해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수의 경우 국산차보다는 수입차의 감소율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평균 판매 가격이 사상 최고치에 달한 데다 금리가 치솟아 중산층 이하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급감할 수 있다”며 “국내외 수요 양극화로 인해 중형급 이하 모델의 생산이 감소하면서 완성차 업체의 공장 가동률은 물론 부품 업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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