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규제에 손잡은 日·네덜란드…“삼성·SK, 선택의 기로 놓였다”

시간 입력 2023-01-31 07:00:00 시간 수정 2023-01-30 17: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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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네덜란드, 미국 대 중국 수출 제한에 합의
세계 5대 반도체 장비 업체, 中에 수출 안 해
중국 내 첨단 장비 유입 중단…삼성·SK ‘비상’
中 현지 공장 타격 불가피…장비 교체 어려워
韓 대중 수출 의존도도 높아…“中 잃을 수도”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네덜란드와 일본가 동참키로 결정하면서, 중국으로의 첨단 반도체 장비 유입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현지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3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난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이 추진 중인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및 칩 제조 장비 수출 제한에 합의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 합의는 최근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일본·네덜란드 3국 간 국가 안보 고위급 간부 회의에서 결정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과 네덜란드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데 미국과 함께할 준비가 됐다”며 “이를 계기로 자국의 국내 반도체 능력을 구축하려는 중국의 야망을 약화시킬 강력한 동맹이 형성될 것이다”고 전했다.

다만 합의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미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세이지 관방장관도 “일본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면서도 더 이상의 언급을 거부했다.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발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번 합의는 미국이 지난해 10월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생산을 견제하기 위해 대중 반도체·칩 제조 장비 수출 통제 조치를 부과한 이후 약 4개월 만에 성사됐다.

당시 미 정부는 중국이 미국의 첨단 장비를 통해 반도체를 제조하고,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를 들어 강도 높은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단행했다.

해당 조치는 △18nm(1nm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을 사용한 로직 칩(16nm 내지 14nm) 등 기술 수준이 높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하지 못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의 숨통을 더 옥죄기 위해 우리나라와 일본, 네덜란드 등을 상대로 해당 규제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미국이 대중 제재를 위한 동맹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는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은 연평균 29.6%씩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21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386억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에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에 힘을 보태기로 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큰 암초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와 램리서치, KLA를 비롯해 네덜란드 ASML,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 세계 5대 반도체 장비 업체가 대중국 반도체 및 칩 제조 장비 수출 금지에 동참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노광 장비를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ASML의 대중 규제 참여는 중국에 큰 악재다. EUV(극자외선)·심자외선(DUV) 노광 장비가 없으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 니콘 등의 대중국 수출 제한도 중국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성캠퍼스. <사진=삼성전자>

다만 일본과 네덜란드에서 중국에 대한 첨단 장비 수출 통제 시 법 개정 등이 필요해 실제로 규제가 이뤄지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를 두고 NYT는 워싱턴 싱크탱크인 ‘국제관계전략센터’의 에밀리 벤슨(Emily Benson) 선임연구원을 인용해 “일본과 네덜란드는 대중국 규제를 적용하기 위해 법률과 규정을 변경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며 “이번 합의의 당사국 간에 수출 통제 조치를 서로 반영하는 데에도 몇달 또는 몇년이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일본·네덜란드 간 반도체 동맹 강화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 현지에서 가동 중인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데 타격이 불가피 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삼성·SK는 중국 공장에서 상당한 양의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전체 출하량 중 약 40%를 중국 시안공장에서 생산하고, 쑤저우에선 후공정(패키징)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공장은 D램 생산량의 약 50%를 양산한다. 지난해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공장도 중국 다롄에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반도체 장비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이어 일본과 네덜란드까지 대 중국 첨단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한 것은 양사에게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만 미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한시적으로 반도체 장비 공급 1년 유예 조치를 통보 받았다. 다만 유예 기간이 1년에 불과해 양사에 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워낙 빠르게 진화하는 반도체 기술 특성상 1년이라는 시간은 첨단 장비를 교체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사진=SK하이닉스>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삼성·SK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중국은 우리나라 반도체 품목의 최대 수출국에 올라 있다. 2021년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은 △시스템 반도체 32.5% △메모리 반도체 43.6% △반도체 장비 54.6% △반도체 소재 44.7% 등이다.

첨단 장비 도입 난항으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정체 될수록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 역시 둔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미국·일본·네덜란드의 강도 높은 대중국 제재는 우리나라가 최대 시장인 중국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업계 안팎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네덜란드가 뭉치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중국에 편중된 반도체 수출을 다른 국가로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협은 “반도체 수출에서 과도한 중국 의존 구조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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