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미국산 반도체 쓴다”…삼성·SK·LG, 고객사 뺏기나 ‘촉각’

시간 입력 2023-05-25 07:00:02 시간 수정 2023-05-24 17: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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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브로드컴과 수십억달러 규모 5G 반도체 공급 계약
팀 쿡 CEO “애플, 美서 개발되고 만들어지는 기술 의존”
현지 생산 부품 조달 중점…미 중심 공급망 강화에 동참
공급망서 핵심이던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초비상’
“애플 행보, 韓 기업에 큰 타격…핵심 고객사 잃을수도”

미국 애플 로고. <사진=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앞세워 자국 중심의 공급망 강화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미국내 기업간 공조가 본격화 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부품업계의 큰 고객사인 애플이 미국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과 수십억달러 규모의 신규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급망 구조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애플의 반도체·부품 공급망 변화에 삼성·LG·SK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부품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 기업간 공조강화가 자칫 국내 기업의 고객사 이탈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되는 부문이다.

애플은 23일(현지시간) 브로드컴과 다년 간 5G(5세대 이동통신) 무선 주파수(RF) 반도체 개발을 위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새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계약 기간과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 UBS는 이번 계약이 2026년까지 150억 달러(약 19조741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브로드컴은 무선 통신 기기에서 송수신 신호를 분리해주는 핵심 부품 FBAR 필터를 포함해 5G RF 부품과 최첨단 무선 접속 부품 등을 개발하고, 이를 애플에 공급키로 했다. FBAR 필터 등 부품들은 미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 등 브로드컴의 미 현지 제조 및 기술 허브에서 개발돼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국 브로드컴. <사진=브로드컴>

애플과 브로드컴 간 부품 공급 계약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 애플은 이번 계약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 제목에 ‘미국에서 만든 부품을 위해’라는 문구를 넣었다. 미국산 부품 사용을 위한 계약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미국 제조업의 혁신 정신과 창의성을 활용한다는 약속을 할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며 “애플의 모든 제품은 여기 미국에서 개발되고 만들어지는 기술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미국의 미래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를 추진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현지에서는 애플이 미국 중심의 공급망 강화는 물론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원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 동참하고, 이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은 여전히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위주의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번 브로드컴과의 계약을 통해 미국산 부품을 사용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며 “또 애플은 미국 내 제조를 활성화하려는 미 정부에 호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 부품을 조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주요 업체들도 애플의 공급망 개편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당장, 미국 중심의 공급망 강화 움직임으로 국내 반도체 업체들과 디스플레이, 부품업체들이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SK에게 애플은 핵심 고객사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애플 아이폰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낸드플래시가 대거 공급된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애플 ‘아이폰15’ 시리즈에 낸드 채용량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그간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많다.

그러나 애플이 브로드컴과 마찬가지로 미국산 낸드를 아이폰에 탑재하겠다고 나설경우, 삼성과 SK는 하루아침에 큰 고객사를 잃게 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성캠퍼스. <사진=삼성전자>

애플의 이같은 행보에 대만 TSMC는 일찌감치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TSMC가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 칩을 애플에 공급키로 했기 때문이다. 당초 TSMC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에 들어가는 최신 칩을 대만공장에서 양산해 왔다.

쿡 CEO도 지난해 12월 TSMC가 미 애리조나주에 짓고 있는 피닉스공장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사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쿡 CEO는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반도체 칩에는 자랑스럽게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찍히게 됐다”며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미국 현지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삼성과 SK는 현재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낸드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공장을, SK하이닉스는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공장을 인수해 제품을 양산 중이다. 이들 업체들의 중국 생산 의존도는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낸드의 40%를, SK하이닉스는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애플에 대한 납품 비중이 큰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애플의 공급망 변화를 위기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애플에 아이폰용 디스플레이를 공급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현재까지 가장 최신 모델인 ‘아이폰14’ 시리즈에 70%에 달하는 OLED 패널을 공급해 왔다.

LG디스플레이도 최근 아이폰14 프로 등 상위 모델에 OLED 패널 공급을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아이폰14 생산을 위해 1억 2000만개 규모의 OLED 패널을 주문했다. 이중 2000만개를 LG디스플레이로부터 공급받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사진=LG디스플레이>

이같은 상황에서, 올 초 애플은 아이폰 등 모바일 기기에 자체 개발·제작한 디스플레이를 탑재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애플에 상당량의 OLED 패널을 공급해 온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디스플레이 업계 최대 고객사를 잃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모바일 기기에 탑재할 디스플레이를 OLED 패널에서 마이크로 LED 패널로 전환할 계획이다. 해당 디스플레이는 더 밝고 생생한 색상과 비스듬히 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과 LG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 봤다. 애플이 자사 모바일 기기에 자체 제작한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게 되면 삼성과 LG의 납품 비중은 큰 폭으로 쪼그라들게 된다는 것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미국 위주의 공급망 강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1캠퍼스. <사진=삼성디스플레이>

일각에선 애플을 시작으로 다른 미국 기업들도 미국 기업간 공급망 재편에 동참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애플과 브로드컴 간 공조를 시작으로 미국 기업들이 서로 공급 협력을 강화할수록 국내 기업들이 고객사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브로드컴과의 계약으로 미국산 부품 조달에 나선 것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요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미국 위주의 공급망 강화 행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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