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리스크에 신음하는 산업계] ②철강·자동차·조선 ‘도미노 피해’ 위기…‘조 단위’ 손실 직면

시간 입력 2023-09-12 07:00:01 시간 수정 2023-09-12 17: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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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사상 첫 파업 먹구름…전 산업계 파장 전망
현대차 피크 아웃 우려…영업 손실액만 1조원 예상
HD현대중공업 임단협 극적 타결…불확실성은 여전
“절체절명 위기 속 변수도 많아…대승적 결단 필요”

자동차, 철강 등 산업계 내에 파업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노사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노조가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파업까지 강행하겠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노조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어져 왔지만, 특히 올해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산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현재 노사 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계 노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포스코노동조합이 지난 6일 오후 전남 광양제철소 앞에서 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포스코노동조합이 지난 6일 오후 전남 광양제철소 앞에서 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자동차·철강·조선 산업이 역대급 노조 리스크에 직면하면서 기업의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노사 간 임금 협상 불발로 파업이 현실화하면 철강부터 자동차·조선 등 업종에 이르기까지 전후방 연관 산업의 막대한 도미노 피해는 물론 전반적인 수출 경쟁력 역시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물경제 지표인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하락하는 트리플 감소로 경기 불황 국면에 접어든 데다 파업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어 ‘상저하고’ 패턴의 경제 회복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포스코, 사상 초유 파업 위기…산업계 파장 확산 예상

12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노조는 지난달 23일 열린 20차 교섭에서 임단협 결렬을 선언했다. 핵심 쟁점은 임직원의 임금 인상률로, 이달 6일과 7일 광양과 포항에서 쟁대위를 출범하며 사측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노조는 향후 중노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하고 쟁의 행위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할 예정인데, 과반이 찬성하고 중노위가 조정 중지를 결정하면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만약 노조가 실제로 파업에 나서면 1968년 포스코 창사 이후 55년 만의 첫 파업이다.

노조의 파업은 포스코에 또 한 번 큰 손실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는 지난해 힌남노 태풍과 화물연대 파업으로 홍역을 치렀다. 힌남노 태풍의 여파로 포항제철소가 침수돼 2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고, 화물연대 파업 장기화로 극심한 출하 차질을 겪었다. 무엇보다 포스코의 철강재 수출 비중이 50%를 넘는 만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해 생산 차질을 겪게 되면 타격이 더욱 크다. 포스코로서는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즉시 계약 종료나 납기 지연에 따른 패널티 지급과 같은 손해를 입는 탓이다.

더 큰 문제는 포스코의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가 고로를 갖춘 일관제철소라는 점이다. 1년 365일 쉬지 않고 가동하는 연속 조업 체제인 일관제철소 특성상 일부라도 조업이 중단되면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 특히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릴 정도로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국가 기간산업이고, 포스코는 국내 철강 업계를 이끄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반도체 수출 부진 속 제철소가 멈춘다면 국가 경제의 버팀목인 자동차·조선 등 산업에 연쇄 피해가 예상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노조가 요구안을 모두 수용할 경우 추가로 소요되는 비용은 약 1조6000억원이며, 이는 연간 인건비 총액의 70%를 넘는 수준”이라며 “조합원 1인당 약 9500만원의 연봉 인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과도한 요구”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 파업 시 영업익 1조 증발…피크 아웃 우려

국내 자동차 업계를 주도하는 현대차는 당장 실적 ‘피크 아웃’ 위험에 노출돼 있다. 노조가 지난달 18일 열린 17차 교섭에서 임단협 결렬을 선언한 이후 파업에 나설 채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노사는 이달 7일 21차 교섭을 통해 주요 쟁점인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을 두고 합의점 찾기에 나섰으나, 결국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오는 13일과 14일 각각 4시간 부분 파업을 앞둔 상태로, 실제 파업하면 2018년 이후 5년 만에 무분규 타결 기록이 깨지게 된다. 매 분기 영업이익 신기록을 경신 중인 현대차의 실적 질주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는 오랜 기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노조의 파업으로 천문학적인 손실 비용을 부담해 왔다. 노조의 24일에 걸친 파업으로 14만2000대의 생산 차질을 빚어 3조1000억원의 손실액이 발생했던 2016년이 대표적이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노조가 24일간 파업을 강행하면서 생산 차질 대수만 8만9000대에 달했으며, 1조8900억원의 손실액을 사측에 떠넘겼다. 이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무파업을 이어왔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KB증권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의 파업 현실화 시 발생할 손실액은 1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6년과 2017년 파업 중간 수준의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를 가정한 수치다.

현대차가 실적 고공 행진을 이뤄낸 데 대한 노조의 보상 심리와 고용 불안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에 파업이 장기화하면 손실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에도 영향을 끼쳐 줄파업이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미 현대모비스의 모듈·부품 계열사인 모트라스와 유니투스는 지난 7월 12일에 이어 이달 5일에도 주야간 4시간씩 총 8시간 동안 부분 파업을 하기도 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현실화하면 재고를 활용해 손실을 상쇄할 여력은 크지 않다”며 “9월 중에는 생산이 정상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추석 연휴 시작 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파업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경기 불황 등 대외 변수로 자동차·철강·조선 업종을 비롯한 중후장대 산업을 둘러싼 파업 위기감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만큼 노사 간 양보를 통한 대승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HD현대중공업 노사가 파업 직전인 이달 7일 극적으로 임단협 타결을 이뤄내며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조선 업계가 한시름 놓은 점은 고무적이지만, 철강·자동차 산업과의 연관성이 큰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동차·조선·철강 산업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핵심 기간산업으로, 글로벌 제조업 경기 등 대외 변수에 큰 영향을 받는다”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회사의 생산 능력을 끌어올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대내 변수를 최소화하는 길인 만큼 상생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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