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급한데 '상속세' 부담까지…이재용 사면론 힘 받을까

시간 입력 2021-04-28 07:00:02 시간 수정 2021-04-29 07: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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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경제단체장, 청와대에 이 부회장 사면 건의…“경제회복 위해 화합과 포용의 결단 필요”
삼성, 반도체 투자·유산 상속 등 현안 산적…정부여당 고심 거듭할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대규모 반도체 투자와 고(故)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현안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주요 5개 경제단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그간 사면 여론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정부여당으로서도 최근 대외 경제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 사면론을 더이상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주요 경제단체장 공동 명의로 작성한 '이재용 부회장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건의서에는 손경식 경총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경제단체장들은 건의서에서 "기업의 본분이 투자와 고용 창출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부회장이 하루 빨리 경제 회복과 도약을 위해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해야 한다"며 "화합과 포용의 결단을 내려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경제단체가 이 부회장 사면에 적극 나선 건 최근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故)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세 신고·납부 기한도 코앞에 닥치는 등 주요 현안이 산적해 있는 것도 이유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유산에 대한 상속세 신고 및 납부 마감일인 오는 30일까지,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상속세 규모와 납부방법 등을 포함한 핵심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건희 회장 유산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약 19조원과 2조원 상당의 미술품, 한남동 자택과 용인 에버랜드 부지 등을 포함해 약 22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에 이 부회장 등 유족들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막대한 상속세 규모를 감안해 5년간 분할납부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소유 주식을 어떻게 배분할 지도 결정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 보유 지분은 삼성전자 보통주(4.18%)와 우선주(0.0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등이다. 주식 배분율에 따라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0.7% △삼성물산 17.33% △삼성생명 0.06% △삼성SDS 9.2% △삼성화재 0.09%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부인인 홍라희 전 관장은 삼성전자 지분 0.91%를 보유 중이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삼성물산 5.55%, 삼성SDS 3.9%를 보유하고 있다.

법정비율대로라면 부인인 홍 전 관장이 33.33%의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22.22%를 상속받게 된다. 이 경우 홍 전 관장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그러나 재계에선 법정비율에 따른 상속보다는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쪽으로 주식 배분이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이건희 회장 소유의 삼성생명(20.76%)과 삼성전자(4.18%)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이 넘겨받을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반도체 부문에서도 TSMC와 인텔 등의 공세에 맞서 국내외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자칫 실기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은 물론 4차 산업혁명 주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 산업의 미래 경쟁력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와 시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미국 등에 대한 투자 계획을 공식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올해 최대 280억달러(약 31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힌데 이어, 이달 초에는 3년 간 총 1000억달러(약 111조원)를 투입하는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세계 반도체 1위 인텔도 최근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재촉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를 비롯한 19개 글로벌 반도체·자동차·IT 기업 경영진과의 화상 회의에서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할 것인지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주요 경제단체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 등을 확정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하루빨리 경영에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칫하면 미국 시장을 글로벌 경쟁사에 빼앗기는 것은 물론 삼성전자의 글로벌 반도체 위상은 물론 한국의 산업 경쟁력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5개 경제단체장은 사면건의서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 경쟁국은 강력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며 "경영을 진두지휘할 총수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지면 그동안 쌓아온 세계 1위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말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개막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달 말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개막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구에 그간 정부여당은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경제단체장들의 사면 건의가 있어 관계기관에 전달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과 사면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세균 전 총리도 최근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 "공감대가 마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발언했다.

다만 이번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5개 경제단체장들의 사면 건의가 이뤄진 만큼 관련 논의가 보다 적극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경제단체와의 소통과 협력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면 건의에 대해서도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말 대한상의에서 열린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과 환담하며 "경제부처, 정책실장, 비서실장 모두 기업인들하고 활발하게 만나서 대화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을 통해 5개 경제단체를 잇따라 방문하며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유영준 기자 / yjyoo@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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