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지난해 한국 기업 77개 공격…최근 5년 간 9.6배 증가

시간 입력 2024-03-25 14:14:34 시간 수정 2024-03-25 14: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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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협 ‘주주 행동주의 부상과 과제’ 연구 용역
한국 피공격 기업 수, 미·일 이어 세번째로 많아
주주 행동주의 대비 위한 방어 수단 마련 시급

2019~2023년 국가별 행동주의펀드 피공격 기업 수. <사진=한국경제인협회>

지난해 행동주의펀드로부터 공격받은 한국 기업 수가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기업이 주주 행동주의자들의 타겟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25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에 의뢰해 연구한 ‘주주 행동주의 부상과 과제’에 따르면 공격적 행동주의로 수익을 올리는 헤지펀드 뿐만 아니라 단순 자산 운용사 등 기관 투자자들은 최근 한국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데이터 리서치기관 딜리전트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조사 대상 23개국, 951개사가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이는 2021년 773개사 대비 23%, 2022년 875개사 대비 8.7%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지난해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은 총 214건 발생했다. 2022년 184건과 비교해 16.3% 늘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 김 연구위원은 “행동주의펀드 대응에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 기업이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은 77개나 됐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 8개사에 비해 무려 9.6배 늘어난 수치다.

우리나라의 피공격 기업은 해마다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2019년 8개사였던 피공격 기업은 2020년 10개사, 2021년 27개사, 2022년 49개사 등 꾸준히 늘었고, 지난해엔 80개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불어났다.

일본도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일본의 피공격 기업 수는 103개로, 2022년 108개에 비해선 소폭 줄었으나 2019년 68개보다는 1.5배나 증가했다.

피공격 기업 급증 추세를 보이는 한국, 일본과 달리 영국, 독일 등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43개사였던 영국의 피공격 기업은 지난해 35개사로 줄었고, 독일 역시 33개사에서 21개사로 대폭 축소됐다.

이에 김 연구위원은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이 한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 집중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행동주의펀드화 추세가 강해지고 있는 것도 우리 기업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최근 사모펀드나 일반 기관 투자자들이 수익률 제고 수단으로 행동주의 전략을 활용하면서 행동주의펀드와 일반 기관 투자자들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일반 사모펀드들이 행동주의펀드화되고 있는 것은 행동주의 방식의 기업 공격이 펀드들의 수익률을 높여주는 요긴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상의 행동주의펀드들이 타겟 기업을 동시에 공격하는 ‘스와밍(Swarming)’ 사례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에선 상장을 기피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집중 공격에 시달린 일본 기업들은 아예 회사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나섰다. 비상장으로 전환한 일본 기업은 2015년 47개사에서 2022년 135개사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비상장 전환 사유로는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김 연구위원은 일본의 사례를 고려할 때 한국 기업들도 상장을 기피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 자본 시장이 참여자의 자율성보다 정부 규제가 강하고, 여기에 자본 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도 정부 영향력 하에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압박까지 심화되면 일본처럼 상장 폐지를 결정하거나 상장 자체를 기피하는 우리 기업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 기업이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타겟으로 부상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나 경영권 위협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작 우리 기업에게는 자사주 매입 외에 별다른 방어 수단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 기업이 기관 투자자와의 소통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으나 정부도 행동주의펀드의 지나친 공격에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방어 수단을 제도화해야 한다”며 “주주 행동주의 부상 등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정부도 지배 주주 견제와 감시 프레임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성장하고 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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