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전기료 인상…한전, ‘200조 부채’ 해소 첩첩산중

시간 입력 2023-11-09 16:13:50 시간 수정 2023-11-09 16: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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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산업용 전기요금, kWh당 평균 10.6원↑
주택용 및 소상공인·중소기업용 전기요금은 동결
자산 매각 등 특단 자구책 발표…효과는 “글쎄”
당분간 재무 위기 지속…전기요금 현실화 절실

한국전력 본사. <사진=연합뉴스>

200조원이 넘는 부채와 47조원대 누적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전력(한전)이 대기업 전기요금만 올리는 ‘임시방편’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의식한 정부가 주택용 및 소상공인·중소기업용 전기요금을 끝내 동결키로 한 것이다.

한전은 고강도 자구책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소해 나간다는 입장이지만, 전기요금이 전반적으로 인상되지 않는 한 극심한 재무 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전은 9일부터 산업용 전기 이용 고객 약 44만호 가운데 대용량 고객의 산업용(을) 전기요금을 kWh당 평균 10.6원 올렸다. 요금 인상률로 보면 6.9%에 해당한다.

지난해 기준 산업용(을) 전기를 이용하는 고객은 약 4만2000호였다. 이는 전체 이용 고객의 0.2%에 불과한 수준이다. 주로 대기업이 여기에 포함된다.

다만 이들의 전력 사용량은 26만7719GWh로, 총 사용량 54만7933GWh의 절반(48.9%)에 육박한다.

대신 한전은 시설 규모 등 요금 부담 여력을 고려해 전압별로 산업용(을) 전기요금 세부 인상 폭을 차등화 했다. 산업용(을) 가운데 고압A(3300~6만6000V 이하)는 kWh당 6.7원, 고압B(154kV)와 고압C(345kV 이상)는 kWh당 13.5원 각각 인상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산업용(을) 고압A 이용 기업의 월평균 사용량은 228MWh로, 현재 전기요금은 월평균 4200만원 수준이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같은 전력을 사용하는 기업의 향후 전기요금은 월평균 4400만원으로, 200만원가량 늘어날 예정이다.

고압B 이용 기업은 월평균 2억5000만원, 고압C 이용 기업은 3억원가량의 추가 전기요금 부담이 각각 발생할 전망이다.

한전은 이번 전기요금 조정으로 생기는 추가 판매 수입이 연말까지 4000억원, 내년 1년 간 2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물가와 서민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해 주택용 및 소상공인용 전기요금은 동결했다.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갑) 전기요금도 손대지 않았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오른쪽)과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이달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기요금 인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전이 사실상 반쪽짜리 전기요금 조정을 단행하면서 재무 위기 해소는 후일로 늦춰지게 됐다. 당초 정부는 ‘한전 경영 정상화 방안’으로 올해 kWh당 51.6원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산정한 바 있다.

정부도 한전의 경영 정상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2차관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기요금 인상 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전기요금 조정으로 한전의 재무구조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다”고 시인했다.

다만 한전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통해 재무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전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한전 인재개발원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부지 면적은 64만㎡(약 19만3600평)에 달한다.

인재개발원은 한전 직원의 입사부터 퇴사까지 교육을 책임지는 곳으로, 한전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여겨진다. 이에 올해 5월 자구안 발표 당시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그러나 이번 추가 자구책에 끝내 포함됐다.

한전은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부분이 자연 녹지(99.3%)인 인재개발원 부지의 용도를 변경한 뒤 매각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현재 2500억원 수준인 해당 부지의 가치를 78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다만 해당 부지 매각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연구용 원자로 해체 및 154kV의 고압 지중송전선로 이설, 대체 시설 확보 등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한전KDN의 지분 20%도 민간에 매각한다. 한전KDN은 전력 산업 분야의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를 전담하는 자회사로,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알짜’ 회사다. 지분 가치는 13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한전KDN 지분 매각을 위해서는 국내 증시에 상장돼야 한다. 이에 지분 매각까지 1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이 지분 38%를 보유한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 사업의 지분도 전량 매각한다. 해당 사업은 고정배당금이 확보돼 수익성이 양호하고 매각 제한 조건이 적어 투자자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평가액은 500억원 수준이다.

이렇듯 한전이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하게 될 자금 규모는 약 1조원으로 추정된다.

서울의 한 건물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사진=연합뉴스>

또 한전은 본사 조직을 20%가량 축소하는 등 인력 효율화 계획도 내놨다. 현재 ‘8본부 36처’인 본사 조직을 ‘6본부 29처’로 축소하고, 유사 조직 통합, 비핵심 기능 폐지 등 본사를 정예화한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소규모 지사를 거점 지사로 통합하고, 통합 시너지가 큰 업무는 지역본부나 거점 사업소에서 일괄 수행하기로 했다. 이러한 조직 개편은 2001년 한전 분사 이후 최대 규모다.

올 연말까지 488명의 인원 감축도 완료한다. 설비 관리 자동화 등을 통해 2026년까지 700명 수준의 운영 인력을 추가 감축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2급(부장급) 이상 간부들의 내년 임금 인상분 반납과 위로금 재원 확보 범위 내에서 창사 이래 두 번째 희망퇴직을 실시키로 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이번 추가 자구책과 관련해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시작된 한전의 재무 위기는 기업으로서 버티기 어려운 재무적 한계치에 도달했다”며 “조기 경영 정상화, 국민 부담 경감을 위해 5개년 재정 건전화 계획 등 기존의 자구 대책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한편, 이번에 추가로 발표한 특단의 자구 대책도 가용한 모든 역량을 쏟아 추진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전의 이같은 기대와 달리 업계는 한전이 발표한 추가 자구책이 재무구조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자산 매각의 경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단기간 내 현금 창출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희망퇴직 역시 구체적인 시기나 규모 등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전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선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원가가 높은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자구 대책이 단기간 내 재무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인 만큼 현실적으론 전기요금 인상이 최선의 대안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앞으로 발생할 적자를 줄이는 데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부채와 누적 적자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 할 것이다”며 “당장 내년 한전채 발행에 비상등이 켜진 만큼 전반적인 전기요금 조정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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