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성과급 갈등’ 결국 창사 이래 첫 파업가나…협상결렬·쟁의신청

시간 입력 2024-02-21 17:30:00 시간 수정 2024-02-21 17: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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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임금 협상 교섭 끝내 결렬…노조 “사측, 교섭 해태”
중노위 조정 중지 결정 시 쟁의권 확보…합법적 파업 가능
‘2만 조합원’ 전삼노 단체 행동 임박…트럭 시위 가능성도
초기업노조, 통상 임금 소송 나서…삼성, 노조 리스크 비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임금 협상 테이블에서 노동조합(노조)과 큰 갈등을 빚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한파’로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 큰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임금 인상률을 놓고 노조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8차례에 걸쳐 진행된 노사 간 교섭이 끝내 결렬되면서, 파업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노조가 공식적으로 단체행동을 위한 쟁의권 확보 에 돌입하면서, 지난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된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첫 파업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20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나노파크에서 ‘2024년도 제6차 임금 협상 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이날 교섭은 불과 30분 만에 종료됐다. 대표 교섭권을 가진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가 임금 협상 교섭 결렬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전삼노는 “사측이 보다 개선된 안을 내놓지 않아 교섭을 결렬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4일 열린 제5차 임금 협상 교섭에서 삼성은 노사협의회와 전삼노에 올해 임금 인상률로 예상 물가 인상률 수준인 2.5%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노사협의회는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전삼노 또한 “사측은 여전히 교섭을 해태하고 있다”며 “임금 협상에 대해 진정성이 전혀 없다”고 반발했다. 이번 임금 협상 교섭에서 노사협의회는 임금 인상률 5.74%를, 전삼노는 8.1%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전삼노는 사측이 제5차 교섭에서 2.5%라는 최소한의 임금 인상률을 제시한 만큼 성의는 보였다고 보고, 제6차 교섭에서 집중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제6차 교섭에서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전삼노는 끝내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전삼노는 “지난 한달 간 본교섭 6회, 대표교섭 1회, 실무교섭 1회 등 총 8차례의 교섭을 진행하는 동안 사측은 제대로 된 제시안 조차 가져오지 않았다”며 “다음달 정상정인 임금 인상을 위해 이달 중 교섭을 타결시키자는 노사 합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측은 교섭을 해태했다”고 지탄했다. 이어 “사측은 교섭 고의 지연이라는 추악한 전략으로 노조를 무시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목시리에 귀를 닫고, 예전과 같이 노사협의회를 통해 일방적으로 임금 인상 발표를 자행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좌시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고 경고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교섭 결렬 선언문. <사진=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전삼노는 이미 단체 행동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교섭 결렬 선언 직후 전삼노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노동 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조정 신청은 노사 간 임금·근로 시간·복지·해고·기타 대우 등 근로 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분쟁이 발생했을 때 제3자인 노동위원회가 조속히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중노위는 앞으로 사용자 위원과 근로자 위원,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조정위원회를 열어 중재를 시도한다. 그러나 조정 기간 종료일(조정 신청이 있는 날부터 10일)까지 양측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 조정 중지를 결정한다.

다음달 초 중노위의 조정 중지 결정이 나오면 전삼노는 조합원 투표를 거쳐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다. 1969년 창사 이래 단 한번도 없었던 파업이 현실화 되는 것이다.

전삼노가 실제 파업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는 생산 부문에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삼노 조합원 수가 1만8162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전체 고용 규모인 12만877명의 15.0%에 달하는 숫자다.

전삼노는 이미 파업에 앞서 단체 행동을 위한 트럭 구매를 진행 중이다. 큰 전광판이 설치된 트럭 구입을 완료한 후 음향 시스템도 설치할 예정이다. 트럭의 구체적인 활용 계획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파업 때 노조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으로 사용될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노동조합(LG엔솔노조)이 LG엔솔 본사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파크원타워 앞에서 벌이고 있는 트럭 시위용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임금 인상률을 놓고 삼성전자 노사 간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노조측이 파업 카드까지 고려하고 나선 것은 반도체 한파로 ‘0(제로)’ 성과급을 받아든 데 따른 여파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달 29일 반도체 업황 악화로 지난해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린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직원들에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OPI는 사업 부문의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1년에 한번 연봉의 최대 50%까지 받을 수 있는 성과급이다. 목표달성장려금(TAI)과 함께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성과급 제도로 꼽힌다.

DS 부문은 그동안 거의 매년 연봉의 5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아 왔다. 지난해 초에도 최대치인 연봉의 50%를 OPI로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덮친 반도체 한파로 이번에는 성과급 제로인 봉투를 받게 된 것이다. DS 부문은 지난해 모든 분기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삼성 반도체 부문 누적 적자 규모는 14조 8800억원으로 불어났다.

성과로 제로 지침에 전삼노는 파업 카드를 앞세워 사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파업 위기 뿐만 아니라 새로 소송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출범한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가 삼성을 상대로 통상 임금 소송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공식 출범을 선언한 초기업노조에는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노조, 삼성화재 리본노조,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 등 4곳이 동참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출범한 삼성전기 존중노조도 초기업노조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삼성전기 존중노조는 아직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으나 규약 변경을 마치고 올 5월께 합류할 예정이다.

삼성그룹 내 거대 노조로 부상한 초기업노조는 통상 임금 소송을 통해 사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번 소송은 명절 귀성 여비, 개인 연금 회사 지원금, 고정 시간 외 수당 등을 통상 임금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골자다. 통상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고정적·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으로, 연장·휴일 근로 수당 산정을 위한 기초로 활용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부터 명절 상여금을 통상 임금에 포함시킨 바 있다. 이에 초기업노조는 3년의 임금 채권 시효 기간을 고려해 이전 2년 6개월분의 차액 지급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수당이 통상 임금에 산정되면 직원들이 받는 수당은 크게 늘어나게 된다.

특히 삼성전자 DX 노조는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통상 임금 소송에 참여할 소송단 모집에 나섰다. DX 노조는 이달 말까지 소송단을 모집한 뒤 다음달 초 법원에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소송단 모집을 마친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생노조는 본격적인 소송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올 5월 초기업노조에 합류하는 삼성전기 존중노조 역시 소송단을 모집 중이다.

19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출범식.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등 삼성의 주력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파업, 소송 등 노조 리스크까지 추가되면서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 추진은 큰 부침을 겪을 전망이다.

재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그룹 내 노조들이 임금 협상 교섭 결렬에 따른 파업 추진, 통상 임금 소송 등으로 사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며 “전삼노에 이어 초기업노조까지 새로 가세하면서 삼성전자의 노조 리스크는 날로 커지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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