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의 봄’ 오나 했는데”…미, 대중 수출통제 요구에 삼성·SK ‘화들짝’

시간 입력 2024-02-01 17:14:48 시간 수정 2024-02-01 17: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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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반도체 업계,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입장문 제출
“한국 등 동맹국도 대중 수출 통제 도입해야”
AMAT·KLA·램리서치 등 미 장비 업체도 동조
중국 의존도 큰 삼성·SK, 반도체 장비 확보 비상

미·중 반도체 갈등. <그래픽=권솔 기자>

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미·중 갈등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반도체 업계가 한국 등 동맹국의 기업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팔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반도체 시장이 회복국면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미 반도체 업계가 대(對) 중국 반도체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중국 반도체 사업 비중이 큰 K-반도체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도체 장비 수급이 어려워지면 삼성·SK의 중국 사업에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관보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같은달 17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가 동맹국에 비해 복잡하고 포괄적이라 자국 기업들이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SIA는 “현재 미국 기업의 경우 수출 통제 대상 목록에 명시되지 않은 제품도 첨단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면 중국에 일체 수출할 수 없다”며 “이미 판매한 장비에 대한 지원 서비스도 제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일본, 한국, 대만, 네덜란드 등 기업은 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반도체 장비면 중국에 수출할 수 있어 규제의 비대칭성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결국 미국 반도체 업계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특히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KLA, 램리서치 등 미국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도 각각 의견서를 내고, SIA의 주장을 뒷받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미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에게도 유사한 수출 통제를 도입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또 미국과 다른 반도체 장비 생산국들이 같은 품목을 통제하고 같은 허가 절차를 두는 다자 수출 통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번에 제기된 SIA의 주장에 앞서 미 정부도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심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수출 통제를 총괄하는 엘렌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지난달 12일 한국 전략물자관리원이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첨단 기술이 적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한국 등 관련 기술을 보유한 동맹국과 새로운 다자 수출 통제 체제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성캠퍼스. <사진=삼성전자>

만약 미국의 수출 통제가 동맹국으로도 확대되면 중국 업체 뿐만 아니라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두고 반도체를 양산해 온 주요 반도체 업체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 제재로 사실상 중국 반도체공장 내 장비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해지면서 첨단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금지를 확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K-반도체가 피해를 입을 위기에 처했다”며 “반도체 장비를 중국으로 들여오지 못하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반도체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당장, 중국 의존도가 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고심이 더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공장을,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지)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이고,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공장을 인수해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량도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낸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일각에선 삼성·SK 등 K-반도체 업체들이 중국 생산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지난해 7월 발표한 SK하이닉스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 대응 시계가 빨라질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며 “SK는 중국 외 지역에서 생산 기반을 조정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재무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상당 수준의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는 삼성·SK로서는 ‘탈중국’을 고려하기란 쉽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반도체 사업을 당장 접을 수 없는 상황이다”며 “미국의 대중 제재에 저촉되지 않고 중국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사진=SK하이닉스>

한편 미국의 수출 통제 강화가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미 반도체 업계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모든 동맹국이 수출 통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한국에 대해선 네덜란드, 일본처럼 더 엄격한 수출 통제를 도입하도록 압박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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