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 수익성 바닥…3년째 손익분기점 하회
석유화학 산업 위기 장기화 우려 지속 확대
새 정부 출범, 구조개편 늦어져…“회생방안 시급”

만성적인 누적적자로 한계상황에 도달한 K-석유화학 업계가, 정부 차원의 구조개편 작업이 지연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발표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정책조율이 늦춰지면서 해당 기업은 물론 지역경제에 큰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산업계는 물론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가 3대 기간산업인 석유화학 업종을 다시 회생시키기 위한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평균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값)는 200.9달러로,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250달러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NCC(나프타분해시설)를 보유한 석유화학 업체의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로, 최근 3년 간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내 석화 산업의 위기를 글로벌 시장 침체와 경쟁과열에 따른 구조적 문제로 보고 있다.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석유화학 제품이 과잉 공급되면서 NCC를 보유한 국내 석화 업체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실정이다.
당장, 국내에서 대규모로 NCC를 운영하고 있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은 과거 중국의 경제성장에 힘입어 한국산 에틸렌을 대량 수출하며 높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석화 제품이 공급 과잉에 이르자 한국산 에틸렌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수익성 저하로 국내 대표 기업들은 적자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은 2분기 석유화학 부문에서 영업적자가 900억원에 달했다. 롯데케미칼도 같은 기간 2161억원, 한화솔루션도 468억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이들 석유화학 업체들은 내부적으로 부실사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지만, NCC를 포함한 기존 석화 사업의 부진이 전체 실적을 끌어 내리고 있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사진=롯데케미칼>
정부의 대책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석화 업계는 선제적으로 수익성 개선 활동에 돌입했다. 다만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지역 경제 붕괴, 기업 간의 갈등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먼저 국내 석화 업체들은 수익성이 악화된 설비를 중단하거나 통폐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2021년 설립한 여수 NCC2공장을 이미 지난 2023년 4월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도 HD현대케미칼과 대산 석유화학단지 내 NCC 설비 통폐합 방안을 논의 중이다.
생산 중단이나 핵심 시설의 통폐합은 국내 지역경제에 즉각 약영향을 끼쳤다.
에너지·기후 정책 싱크탱크 넥스트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화단지가 위치한 전남 여수(여수 석화단지), 충남 서산(대산 석화단지), 울산·온산(울산 석화단지·온산 국가산업단지)의 지난해 지방세 징수액 총액은 1조9836억원으로, 2023년 대비 13.9% 감소했다. 특히 LG화학의 NCC2공장 가동이 중단된 여수는 1년 새 무려 26.8% 감소한 2927억원의 지방세를 거두는 데 그쳤다. 석화단지 3곳 중에서 감소 폭이 가장 큰 곳도 석유화학 시설이 밀집한 여수로 나타났다.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가운데, NCC 운영을 둘러싸고 해당 기업간 갈등의 골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최근 한화와 DL은 여천 NCC 문제로 서로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천 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각 지분 50%씩 보유하고 있는 합작 법인이다.
한화와 DL 간 갈등의 배경에는 여천 NCC의 오랜 실적 부진과 이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깔려 있다. 여천 NCC는 지난 4년 간 극심한 적자 수렁에 허덕여 왔다. 버티다 못한 여천 NCC는 최근 여수3공장 가동마저 중단했다.
향후 1년 이내에 돌아오는 차입금 만기만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당장 이달 21일까지 31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부도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여천 NCC는 한화와 DL에 3000억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한화는 지난달 1500억원의 자금 대여를 승인하며 여천 NCC 살리기에 나섰으나 DL은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며 자금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를 두고 한화와 DL 간 다툼도 본격화 되는 양상이다.
다행스럽게 자금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던 DL이 자금 지원을 위한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 여천 NCC의 재무위기는 일단 봉합 수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실적 개선이 어려운 여천 NCC에 대한 대주주의 자금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석유화학 업황이 언제 개선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한화와 DL이 재무 건전성 개선에 언제까지 힘을 보탤 수 있을지도 예단하기 힘들다.

여천NCC 에틸렌공장. <사진=여천NCC>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가 날로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 또한 후속 지원책 마련에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정부 차원의 석화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발표된 후,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올 3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의뢰한 ‘석화 사업 재편 컨설팅 용역 결과’ 보고서를 산업부에 제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부는 올 6월 후속 지원책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일정과 겹치면서 석유화학 구조개편을 위한 처방은 차일피일 지체되고 있다.
정부의 후속 지원책이 요원한 사이, 국내 석화 업계를 둘러싼 불안감은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최한 ‘석화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 재편’ 주제 포럼에서 김지훈 BCG 대표파트너는 “글로벌 트렌트 변화로 동북아 내 에틸렌 및 범용 폴리머의 공급이 크게 증가해 국내 석화 산업은 2022년 이후 다운턴(하강 국면)에 직면했다”며 “올해부터 2027년까지 1500만톤 수준의 신규 공장이 가동될 예정이어서 2030년 이전까지는 다운턴이 지속할 예정이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동북아 내 신규 증설 물량을 고려했을 때, 내수 성장 기반의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보유 현금성 자산 및 최근 영업 손익을 고려하면, 3년 이상 지속가능한 국내 석화 업체는 50% 수준에 그칠 것이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부실화와 경쟁력 저하가 동시 다발적으로 닥치면서, 정치권도 다급해 졌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일 대산 석화단지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 위기 선제 대응 지역’ 지정과 같은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겠다고 밝혔다.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석화 업체에 대한 지원을 골자로 한 특별법 발의에 나섰다.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는 전기요금 감면, 연구개발(R&D) 투자 지원, 금융 보증 확대, 공정거래법 규제 완화 등이 담겨 있다.
새 정부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 대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내에서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 이슈 등에 가려 석유화학 구조개편 과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분위기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대한 기자 / dayhan@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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