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 이전 요구 ‘논란’…황당한 삼성·SK “첫 삽 뜬 지 언젠데”

시간 입력 2025-12-30 07:00:00 시간 수정 2025-12-29 18: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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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후부 장관 “삼성·SK 반도체 클러스터, 전기 많은 곳으로 가야”
장관 발언에 용인·새만금 지역 떠들썩…대규모 투자한 K-반도체 근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삼성 360조원·SK 600조원 등 약 1000조원 투입
SK, 올 2월 1기 팹 착공 돌입…삼성은 토지 소유자들과 보상 협의 착수
K-반도체 “첨단 칩 역량 강화 위한 골든타임 놓치지 않아야” 한 목소리

AI(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본격 도래한 가운데, 첨단 칩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주요국 간 경쟁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이에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K-반도체는 경쟁국보다 먼저 차세대 칩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정부가 수도권에 짓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암시하면서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반도체 2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K-반도체 산업 육성을 약속했던 정부로부터 반도체 클러스터 지방 이전설이 흘러나오자, 수백조원을 투자키로 했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 장관이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전력이 풍부한 호남 지역으로 이전할 필요가 있다고 시사하면서 K-반도체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 26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에 입주하면 두 기업이 사용할 전기의 총량은 원전 15기 분량이다”며 “전기를 끌어오는 방식이 아닌, 기업이 전기가 많은 곳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미 전력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필요가 있겠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주관하는 김 장관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암시하는 발언을 내놓자, 당장 지역 정치권에선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용인시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언주·이상식·손명수·부승찬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전력·용수 등 핵심 기반 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고, 정부 차원에서도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역시 ‘이미 착공한 사업 계획을 바꿀 수 없고 전력·용수는 차질이 없게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짚었다.

국민의힘 소속 용인시 당협위원장들도 “이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천문학적인 예산과 민간 투자가 집행됐다”며 “사업 추진을 지연시키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규탄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도 김 장관의 입장에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산업단지(산단) 내 토지 소유자들에게 손실 보상 협의 통지서를 발송하며 보상 절차를 시작했고, 삼성전자와 용지 분양 협약까지 한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반도체 프로젝트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반면 반도체 클러스터의 이전 부지로 거론된 호남 지역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 진안군, 무주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호영 의원은 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정부가 드디어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며 “‘전기 없는 용인’은 허상이며, ‘전기 있는 지방’으로 가는 것만이 살 길임을 인정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이다”며 “송전탑을 지을 수 없는 현실, ‘RE100(재생에너지 100%)’이라는 무역 장벽, 그리고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시대 정신이 모두 새만금을 가리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전북 시의회·군의회는 물론 시민단체로 구성된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유치추진위원회’도 “에너지 ‘지산지소’를 실현해야 한다”며 새만금 이전설에 힘을 보탰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들어서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진=연합뉴스>

김 장관의 언급이 지역 갈등으로까지 번질 위기에 처한 가운데, 용인시는 서둘러 기존 계획대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일 시장은 하루 전인 28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용인에서 진행 중인 초대형 반도체 프로젝트와 교통 인프라 구축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시장은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 반도체 클러스터에 약 600조원, 삼성전자가 처인구 남사읍 일대 반도체 국가 산단에 약 360조원 등 1000조원에 육박하는 투자를 진행키로 했다”며 “용인은 앞으로 단일 도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될 곳이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용인에 투자하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과 지자체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반도체 클러스터를 통해 첨단 칩 경쟁력을 제고하려 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간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미 지난 2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착공에 돌입한 SK하이닉스는 더 난처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원삼면 일대 415만㎡(약 126만평) 규모의 부지에 구축되는 메가급 반도체 산단으로, SK의 첨단 AI 메모리 양산을 주도할 핵심 생산 거점이다. 이 곳에는 총 4기의 팹이 구축된다. 팹 1기가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M15X 6기와 맞먹는 규모임을 감안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기 팹 공사 첫 삽을 뜬지 약 11개월이 지난 현재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특수 약품 등을 공급해주는 CUB(센트럴유틸리티빌딩), 반도체가 생산되는 핵심 생산 시설인 팹, 수자원을 재사용하는 데 필요한 WWT(워터웨이스트트리트먼트), 임직원 사무동 등 주요 시설들이 어느 정도 윤곽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보다 한발 늦긴 했지만 삼성전자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 19일 LH와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LH는 22일부터 산단 예정지 내 토지 소유자들과 토지 및 지장물(건물, 공작물, 수목 등)에 대한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 LH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보상 절차 진행률은 14.4%를 기록 중이다.

삼성전자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남사읍 일대 728만㎡(약 220만평) 규모의 부지에 들어서는 초대형 시스템 반도체 국가 산단이다.

이미 1기 팹을 짓고 있는 SK와 토지 보상이 진행 중인 삼성 등 K-반도체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이 순항하고 있는 가운데, 김 장관이 쏘아 올린 때아닌 지방 이전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024년 12월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 산업단지 지정 행사. <사진=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용인에 구축키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의 새만금 이전이 현실화할 경우, K-반도체의 역량 강화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용인의 경우 경기 이천, 수원, 화성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조성돼 온 반도체 생태계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이에 따른 시너지를 누릴 수 있다. 또 석·박사급 반도체 인재들이 수도권을 선호한다는 점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강이 제공하는 풍부한 수자원도 쉽게 확보 가능하다.

그러나 새만금으로 옮기면 이들 장점은 모두 누릴 수 없게 된다. 풍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기엔 어려움이 따르는 셈이다.

더구나 이미 짓고 있거나 토지 보상에 착수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뒤엎고, 다시 새만금에 산단을 구축하는 것은 첨단 칩 경쟁력을 제고할 시간만 늦추는 꼴이라는 분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렇다 보니 반도체 업계 안팎에선 세계 각국이 반도체 패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한편 기후부는 김 장관의 발언을 두고 “원론적인 입장에서 우려를 전달한 것이다”고 한발 물러서는 뉘앙스를 풍겼다.

기후부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한데, 고민이 많다는 뉘앙스를 전달한 것이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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