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함정 수출 방식 전환…설계 팔고 현지서 짓는다

시간 입력 2026-10-06 17:30:00 시간 수정 2026-10-06 17: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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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국영조선소와 상륙지원함 공동건조 진수
발주국 현지건조 요구 확산에 수출구조 개편
함정 수익성과 수주 진도는 과제로 남아 있어

HD현대중공업이 함정 수출 방식을 완제품 인도에서 설계·기술 수출로 옮기고 있다. 페루 국영 조선소와 공동으로 건조한 상륙지원함을 현지에서 진수하면서 이 방식의 실현 가능성을 처음 입증했고, 필리핀에서도 현지 생산 기반을 활용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 발주국이 자국 내 건조와 기술이전을 계약 조건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난 데 따른 대응이다.

6일 HD현대중공업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페루 시마조선소에서 페루 해군의 신형 상륙지원함 1번함 ‘침보테(Chimbote)함’ 진수식을 열었다. 행사는 케이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직접 주관했고, 라파엘 벨라운데 페루 국방장관과 페데리코 하비에르 브라보 데 루에다 페루 해군총사령관, 최종욱 주페루 대한민국 대사, 주원호 HD현대중공업 사장 등이 참석했다.

침보테함은 HD현대중공업이 2024년 4월 페루 해군으로부터 4억6290만달러 규모로 수주한 함정 4척 가운데 하나다. 4척은 3400톤급 호위함 1척과 2200톤급 원해경비함 1척, 상륙지원함 2척으로 구성된다. 2번함 ‘탈라라(Talara)함’도 지난 8월 초 육상 건조 공정을 마쳤다.

이번 사업에서 HD현대중공업은 설계와 기술지원을 맡고, 시마조선소가 현지 생산시설을 활용해 블록 생산과 조립, 의장, 시험·시운전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국내 조선소가 함정을 완성해 발주국에 넘기던 기존 방식과 다르다. HD현대중공업이 해외 조선소와 공동으로 건조한 함정을 현지에서 진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일부 인원을 파견하고 현지 인력이 건조하는 방식”이라며 “해당 국가와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쌓는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페루가 자국 조선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어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

방식을 바꾼 배경에는 함정 발주 시장의 조건 변화가 있다. 페루와 칠레, 인도 등은 자국 조선산업 육성과 고용 창출을 이유로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을 계약 조건에 넣고 있다. 완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으로는 입찰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업이 늘어난 셈이다.

HD현대중공업은 현지 협력 기반을 꾸준히 쌓아왔다. 2024년 3월 필리핀에 해외 첫 특수선 엔지니어링 사무소를 열었고, 같은 해 11월 시마조선소와 잠수함 공동개발 양해각서를 맺었다.

협력 범위는 수상함에서 잠수함으로 확대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페루 해군, 시마조선소와 차세대 잠수함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1월 착수한 1500톤급 잠수함 기본설계는 11개월 일정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회사는 자체 개발한 수출용 잠수함 HDS-1500을 페루 사업의 기반 모델로 제시해 왔다. 설계를 마치는 대로 선도함 건조에 착수하기 위해 페루 정부와 협의하고 있으며, 건조 계약이 성사되면 회사의 첫 잠수함 수출이 된다.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페루 시마조선소에서 케이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사진 오른쪽에서 열두 번째)을 포함한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HD현대중공업과 시마조선소가 공동으로 건조한 ‘침보테(Chimbote)함’ 진수식을 진행했다.<사진= 페루 대통령실 홈페이지>
지난 8월 18일(현지시간) 페루 시마조선소에서 케이코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사진 오른쪽에서 열두 번째)을 포함한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HD현대중공업과 시마조선소가 공동으로 건조한 ‘침보테(Chimbote)함’ 진수식을 진행했다.<사진= 페루 대통령실 홈페이지>

변수는 페루의 정치 일정이다. 공동개발 계약은 전임 정부 시기에 체결됐고, 건조 계약 논의는 지난 7월 28일 출범한 후지모리 정부의 예산 편성 이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경쟁사도 같은 방식을 앞세워 남미 시장에 뛰어들었다. 칠레 정부가 완제품 수입을 배제하고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한화오션은 잠수함과 호위함을 국영 아스마르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인도네시아 PT PAL 조선소에 잠수함 기술을 이전해 현지 조립을 성사시킨 경험이 있다.

HD현대중공업의 차별점은 실물 건조와 진수 단계에 먼저 진입한 점이다. 회사가 지금까지 수주한 수출 함정과 특수선은 20척으로, 필리핀 12척과 페루 4척이 여기에 포함된다.

현지 생산 협력 논의는 필리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지난달 7일 서울에서 길베르토 테오도로 주니어 필리핀 국방장관과 만나 필리핀 해군 현대화와 현지 조선산업 육성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논의했다. 양측은 지난해 가동에 들어간 수빅의 HD현대필리핀조선소를 협력의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이 조선소는 현지에서 건조한 첫 선박을 최근 진수했고 내년 선주사에 인도할 예정이다.

필리핀은 해군 창설 이후 처음으로 잠수함 2척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프랑스 나발그룹, 스페인 나반티아,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이 가세하면서 다자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테오도로 장관은 지난달 7일 로이터통신과 만나 이 사업이 아직 검토 단계라고 밝혔다.

수출 방식이 현지 공동건조 하나로 굳어진 것은 아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스웨덴 해사청으로부터 3억4890만달러 규모의 쇄빙전용선 1척을 수주했다. 이 선박은 울산에서 건조해 2029년 인도한다. 발주 조건에 따라 국내 건조와 현지 공동생산을 병행하는 구조다.

다만 함정 사업의 수익성과 수주 속도는 과제로 남아 있다. 올해 상반기 함정 수주는 3억6400만달러로 연간 계획인 약 30억달러의 12.1%에 그쳤다. 같은 기간 상선 수주는 118억4500만달러로 연간 계획(114억7000만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수익성 격차도 크다. 2분기 함정 부문 매출은 3010억원, 영업이익은 18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6.0%였다. 지난해 2분기보다 매출은 32.7%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3% 줄었다. 같은 기간 상선 부문 영업이익률은 17.8%로 함정의 3배 수준이다.

HD현대중공업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필리핀 후속 함정과 페루 잠수함 사업 수주를 하반기 목표로 제시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지난해 10월 헌팅턴 잉걸스와 차세대 군수지원함 공동 건조를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했고, 미 국방부로부터 구축함과 군수지원함의 가격과 건조 가능 규모, 납기 정보를 요청받아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주원호 HD현대중공업 사장은 “이번 침보테함의 진수는 민·관이 하나 돼 이뤄낸 팀코리아의 성과”라며 “K-함정의 경쟁력을 높여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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