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예술 속에서 일하는 공간, 태광그룹 사옥 흥국생명빌딩을 가다.

입력 2022-11-16 07:00:01 수정 2022-11-16 10: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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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미지의 여유’...사옥 3층 세화미술관 '미지의 걸작' 연말까지 전시
세계 산업화의 상징 해머링맨의 비밀...서울 해머링맨이 가장 크다.
세계 최대 바코드 ... 흥국생명빌딩 로비의 기네스 기록물

살바도르 달리의 '꽃이 피어 있는 눈(no.8)' <사진 제공=세화미술관>
살바도르 달리의 '꽃이 피어 있는 눈(no.8)' <사진 제공=세화미술관>

화폭 속 붉은 벽돌담을 뚫은 눈동자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 눈썹마다 꽃이 피었다. 누군가의 꿈, 기괴한 꿈이다.

그림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꽃이 피어 있는 눈(no.8)’이다.

“발레극 ‘광란의 트리스탄’ 무대를 꾸미려 제작된 작품입니다. 트리스탄의 비극을 상기하게 하죠”

#도심의 ‘미지의 여유’

기괴한 흡인력에 빠져드는 순간, 큐레이터의 맑은 목소리가 깨운다.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세화미술관(이사장 서혜옥), ‘미지의 걸작’ 전시회다. 큐레이터는 세화미술관 정다은씨다. 미술관에는 달리를 비롯한 현대 미술 거장 17명의 작품 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마크 퀸, 만 레이, 프랭크 스텔라 등 미술 문외한이라도 ‘아!’하며 고개를 끄덕일 거장들이다. 이들 거장의 작품들 가운데 대중적이지 않은 것만 모았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미지의 걸작’이다. 전시 기간은 올 연말까지다. 

세화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미지의 걸작 (The Unknown Masterpiece)' <사진 제공=세화미술관>
세화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미지의 걸작 (The Unknown Masterpiece)' <사진 제공=세화미술관>

작품은 모두 세화미술관 소장품이다. 세화미술관은 태광그룹이 지난 2009년 출자해 설립한 세화예술문화재단의 전시공간이다. 당초 ‘일주&선화 갤러리’를 지난 2017년 세화미술관으로 확장해 개관했다.

미술관의 위치는 서울 광화문 태광그룹 사옥 흥국생명빌딩 3층이다. 한국의 심장부 가장 번화한 도심의 대기업 사옥에 위치했다. 

광화문 새문안로에서 마포대로까지 서울의 심장이다.  매일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과 거리의 행인들로 북적인다. 세화미술관의 창에는 이 같은 일상의  흐름이 빠르게 스쳐간다. 창 밖의  이 흐름은 미술관의 또 하나의 작품이다. 관람객은 창 밖의 일상과 전시된 작품들 간의 간극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달리기를 멈춘 뒤의 '숨 고르기'라고 할까. 

세화미술관은 광화문에서 마포대로까지 바쁘게 흐르는 일상을 비켜간 ‘일그러진 공간’, ‘미지의 여유’다.

흥국생명빌딩 지하에 위치한 예술 영화관 '씨네큐브' 전경 <사진=김기율 기자>
흥국생명빌딩 지하에 위치한 예술 영화관 '씨네큐브' 전경 <사진=김기율 기자>

# 국내 최고(最古), 세계 최대(最大)의 최고급 예술 영화관 씨네큐브 … 태광그룹의 남다른 예술사랑

그룹 사옥 일부를 쉽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인들의 잦은 출입에 보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직원들의 집중에 방해도 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기업들은 사옥을 직원만을 위해, 업무차 방문하는 이들만을 위해서 운용한다. 

혹 개방을 한다고 해도 목적이 분명하다. 수익성이다.  일부 기업들은 사옥의 로비나 지하 아케이드를 임대해 수익 극대화를 꾀하기도 한다.

이 일반적 생각이 통하지 않는 곳이 태광그룹의 사옥 흥국생명빌딩이다. 

사옥의 입구부터 로비와 지하, 3층 세화미술관까지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누구에게나 개방돼 이용되고 있다. 3층 세화미술관만 해도 전시공간이 약 200평에 달한다.

지하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 ‘씨네큐브’는 최고급 설비의 총 365석 2개 관으로, 예술 영화 전용관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원래 강당이었어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호암아트홀과 같은 공연장으로 만들면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내셨죠. 예술에 대한 애정이셨죠.”

김정훈 태광그룹 홍보팀장의 말이다. 

이 회장은 모두가 아는 태광그룹 오너다. 오너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하기 위해 실무진의 논의 끝에 예술영화 전용관을 만들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00년 12월 2일 씨네큐브가 개관한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2022년 11월 처음부터 예술적 동기로,  예술적 열정으로 탄생한 씨네큐브는 국내 영화 애호가 모두가 사랑하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씨네큐브 상영관 내 모습 <사진 제공=씨네큐브>
씨네큐브 상영관 내 모습 <사진 제공=씨네큐브>

하지만 그 과정에 순풍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본래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씨네큐브를 출범 시킬 수는 있지만 문제는 지속성이었다. 꾸준히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문제였다.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한 기반을 만드는 것과 함께 예술을 알고 제대로 운영하도록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김 팀장의 설명이다. 예술 애호가들의 기호를 맞춘 고급화가 당시 태광그룹 실무진들의 결론이었다. 씨네큐브는 출범부터 ‘최고급’을 지향했다. 한 번은 다 완성된 관람 좌석을 모두 재배치하기도 했다.

“당시 일반 영화관의 앞뒤 의자 열 간격이 95cm였습니다. 모두가 좁다고 느끼면서도 영화관은 모두 그러려니 했지요. 씨네큐브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기존에 설치했던 것을 모두 폐기하고 좌석 열 간격을 110cm로 넓혀 새로 설치했습니다.”

이 좌석 재배치 탓(?)에 영화관 개관이 2개월여 지연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안락한 영화관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전국 각지의 예술영화 애호가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세계에서도 드물 게 자립 경영을 하는 예술 전용 영화관이 됐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잠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씨네큐브는 예술영화 애호가들이 있는 한 영화 상영을 멈추지 않는다는 각오다.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앞에 설치된 '해머링맨' <사진 제공=흥국생명>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앞에 설치된 '해머링맨' <사진 제공=흥국생명>

# 해머링맨 … 그룹 본사 입구부터 세계적 명물

‘뉴욕과 서울의 공통점은?’ 메갈로폴리스? 

현대미술을 아는 이라면 답이 다르다. “해머링맨이 있다.”가 바로 현대예술 애호가들의 꼽는 답이다. 

미국 조각가인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연작인 해머링맨은 뉴욕을 필두로 시애틀, 캘리포니아, LA와 프랑크푸르트, 바젤, 나고야 등 11개의 세계 각국 주요 도시에 세워졌다. 

그만큼 해머링맨의 상징성이 크다는 의미다.  

서울  해머링맨(세화미술관 소장)은 7번째다. 뉴욕 해머링맨이 첫 작품, 맏형이라면 서울 해머링맨은 일곱째인 것이다. 하지만 서울 해머링맨은 11개 형제들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다는 게 특징이다. 키만 22m, 무게는 50t에 이른다.

해머링맨은 글로벌 산업화의 상징이다. 제조업 노동자의 그림자다. 매일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까지(하절기 기준) 35초마다 1회씩 망치질을 한다. 쉼 없이 일하는 게 우리 노동자의 모습, 그대로다. 

검은 형상은 마치 노동자들의 늘어진 그림자인양 보인다. 실제 조나단 브로프스키는 지난 1976년 튀니지의 망치질 하는 구두 수선공 사진을 토대로 해머링맨을 스케치 했다고 한다.

산업 고도화, 자동화 속에 이제 사라져 가는 노동자의 땀을 예술로 승화해 산업화를 리드한 도시들 속에서 말없이 대변하는 게 바로 해머링맨 형제들인 것이다.  

세화미술관 로비에서도 해머링맨을 바라볼 수 있다. <사진=김기율 기자>
세화미술관 로비에서도 해머링맨을 바라볼 수 있다. <사진=김기율 기자>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장엄한 게 바로 태광그룹의 해머링맨이다.

사실 이 같은 역사적 의미 덕에 태광그룹의 해머링맨이 지역 사회에서 받은 특혜가 있다. 태광그룹 옆 해머링맨은 사실 4m가량 인도를 점유하고 있다. 해머링맨의 한 발이 태광그룹 소유 땅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대형 조형물인 해머링맨이 보다 돋보이게 서 있도록 하기 위해 관계 당국을 찾아가 사정을 했습니다. 당시 관계 당국측도 해머링맨의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확인하고 흔쾌히 동의를 했지요”

지난 2002년 6월 4일 헤머링맨의 설치 작업을 지켜본 태광그룹 관계자의 증언이다. 해머링맨은 태광그룹만의 조형물이 아닌 것이다. 서울시민 모두의 조형물인 것이다.

이 해머링맨은 올해로 만 20세가 됐다. 지난 20년간 한결같은 망치질로 서울시민 노동의 땀을 대변해왔다.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1층 로비에 설치된 에카드누스의 '홀론즈키의 사열' <사진=김기율>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1층 로비에 설치된 에카드누스의 '홀론즈키의 사열' <사진=김기율>

#로비 자체가 미술관

벽 위의 60개 붉은 전구의 불빛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 타오른다. 그런데 조금씩 다가가자 홀연히 불빛이 사라진다. 전구 하나의 불빛이 아니다. 한 무리 전구들의 불빛이 마치 마술처럼 사라졌다.

태광그룹 사옥 로비 뒤편 엘리베이터 벽면에 위치한 조명디자이너 잉고 마우러와 홀로그램 기술 전문가인 에카드누스의 작품 ‘홀론즈키의 사열’(Parade of Holonzky)이다.

홀로그램을 활용해 마술과 같은 전구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홀론즈키의 사열’은 60개의 홀로그램 판과 소켓으로 이루어진 조명 예술작품이다. 관람객이 보는 방향에 따라 소켓의 전구가 나타났다 사라져 버린다.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1층 로비 전경. 정문에 들어서면 강익중의 '아름다운 강산'과 대형 바코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사진=김기율 기자>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1층 로비 전경. 정문에 들어서면 강익중의 '아름다운 강산'과 대형 바코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사진=김기율 기자> 

태광그룹 사옥 로비는 앞과 뒤 모두가 현대 예술 작품 전시공간이다. 

정문에 들어서 정면의 벽에는 한국의 세계적인 예술가 강익중씨의 ‘아름다운 강산’이 전시돼 있다. ‘아름다운 강산’은 8060개의 캔버스, 오브제 등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가로 세로 3인치의 작은 화면에 그려진 제각각의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강산’을 이룬다.

강 작가는 1994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씨와 더불어 ‘멀티플 다이얼로그’ 전시회를 열면서 이름을 알렸다. 지난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로비 바닥의 대형 바코드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바코드로 기네스북에 등재까지 된 작품이다. 작품 이름도 그냥 ‘바코드’다.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1층 로비에 설치된 프레 일겐의 '당신의 긴 여정' <사진=김기율 기자>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빌딩 1층 로비에 설치된 프레 일겐의 '당신의 긴 여정' <사진=김기율 기자>

로비의 대형 조각품인 ‘당신의 긴 여행’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프레 일겐의 작품이다. 전체 14개 형태의 각기 다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구부러지고 휘어진 부분들은 ‘자라나는 나무’ 등 각기 이름으로 여행과 여행으로 이뤄지는 인생의 긴 여정을 상징하고 있다.

로비의 작품을 보고 세화미술관의 ‘미지의 걸작’ 관람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다시 현실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온다.

다시 유리문 너머 바쁜 일상이 낯설고 새롭다.  전시된 예술 작품의 아우라 덕이다. 작품들이 주는 영감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주변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깊은 숨을 들여 마시며 회전문을 밀면 '자 다시 일상이다.' 바쁜 차량들로 가득한 광화문 새문안로의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친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기율 기자 / hkps099@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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