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당합병·회계부정’ 모두 무죄…“족쇄 벗고, ‘컨트롤타워’ 복원 시동”

시간 입력 2024-02-05 18:22:45 시간 수정 2024-02-05 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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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검찰 기소 이후 3년 5개월 만에 무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바 회계 처리 모두 적법
법원 “공소 사실 모두 범죄 증명 없어”
이재용호 진격 위한 컨트롤타워 부활 필요성 대두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게 됐다. 법원이 ‘부당합병·회계부정’과 관련한 소송에서 이 회장에 모두 무죄를 선고하면서, 2020년 9월 1일 이후 약 3년 5개월 만에 혐의를 벗게 됐다.

이날 이 회장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부활 논의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특히 사법 리스크 해소 이후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강력한 컨트롤타워 복원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주요 공소 사실마다 “증거가 부족하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번 사건의 공소 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9월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당시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전실 주도로 거짓 정보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 조종 등 각종 부정 거래가 이뤄졌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삼성물산의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삼성물산 이사들을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을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했다.

또한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2015년 합병 이후 회계 처리 과정에서 자산 4조5000억원 상당을 과다 계상했다고 봤다.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공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박대한 기자>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공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박대한 기자>

이같은 이유를 들어 검찰은 지난해 11월 17일 1심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또한 검찰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 6개월에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

또 이왕익 전 삼성전자 부사장과 김신·최치훈·이영호 전 삼성물산 대표에게는 각각 징역 4년에 벌금 3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청했고,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징역 4년, 김용관 전 삼성전자 부사장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와 함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삼정회계법인에 벌금 5000만원, 소속 임원 2명에게는 징역 4년과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회장을 비롯해 모든 피고인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기에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약탈적 불법 승계 계획안이라고 주장한 ‘프로젝트-G’ 문건에 대해선 “대기업집단 차원에서 계열사 지배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거나 효율적인 사업 조정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업무다”며 “이 문건은 미전실 자금 파트에서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종합 검토한 보고서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 공시, 분식회계를 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 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공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박대한 기자>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공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박대한 기자>

이날 1심 선고가 끝난 후 이 회장은 별도의 입장을 전하지 않은 채 빠르게 법원을 떠났다. 대신 이 회장의 법률 대리인은 3년 5개월여 만에 나온 법원 판단에 대한 소회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 역시 “재판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계 처리 등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현명하게 판단했다”며 “큰 짐을 덜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다행히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긴 했지만 이 회장에 더 큰 숙제가 당면해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삼성그룹 경영에 더욱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이 1심에서 장기간의 경영족쇄에서 벗어나면서, 앞으로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간 이 회장은 그룹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 회장은 앞서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고 청탁하며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바 있다. 2021년 1월 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위반으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 됐다 같은해 8월 가석방됐다.

그러나 이 회장은 특경법상 5년 간 취업 제한으로 인해 당시 공식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복권되면서 삼성에 복귀하게 됐다.

이 회장이 그룹 경영에 나설 수 없었던 몇 년 간 삼성은 미래 성장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은 삼성에 있어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5일 서울중앙지법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를 희망하는 응원 카드가 걸려 있다. <사진=오창영 기자>
5일 서울중앙지법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를 희망하는 응원 카드가 걸려 있다. <사진=오창영 기자>

이재용 호(號)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속도를 내는 상황에서, 이번에 마지막 남은 사법 리스크까지 털어 내면서 삼성은 초일류기업으로의 재도약을 목표로 ‘뉴 삼성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전 계열사를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은 2017년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을 폐지하고, 사업 부문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각 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조직의 부재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삼성그룹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이른바 ‘3고 악재’와 미·중 반도체 갈등과 같은 대외 요인으로 경영 환경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그룹 내부적으로 재원을 모아 시너지를 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총괄 조직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 굴지의 여타 그룹들은 컨트롤타워를 통해 그룹을 진두지휘 하고 있다. LG의 경우 지주사인 LG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통해 그룹의 의사결정 사안을 계열사에 안정적으로 전달한다. SK도 SK수펙스추구협의회(SK수펙스)를 통해 계열사들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지속 투자, 각 계열사 현장 경영 등 굵직한 현안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TF 체제로는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과거 미전실에 준하는 그룹 내 컨트롤타워를 부활시켜 이 회장이 그룹을 효율적으로 총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에 준법 경영 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도 컨트롤타워 재설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최근 삼성 준법위원장을 연임하게 된 이찬희 위원장은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 모함이다”며 “개인적 신념으로는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재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도 “삼성은 현재 반도체·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이 회장이 그룹 계열사 전반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제2의 미전실’ 부활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 회장 법률 대리인은 검찰 항소 계획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은 더 말씀드릴 사항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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