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AI 반도체 中 수출 때 허가 먼저 받아야”
중국 슈퍼 컴퓨터에 AI 칩 사용·전용 가능성↑
딥시크 AI 모델 급성장도 미 AI 칩 덕분 분석
HBM도 위기 봉착…SK·삼성, 실적도 ‘적신호’

엔비디아의 AI(인공지능) 칩 ‘H20’의 대(對)중국 수출을 전격 차단하고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텔, AMD 등 주요 반도체 업체에도 해당 조치를 확대 적용하고 나섰다. AI 반도체를 주력 양산해 온 이들 업체의 대중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면서 당장 극심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미국과 중국의 기 싸움이 양국 간 칩 전쟁으로 확산되면서 미·중 사이에 낀 K-반도체 역시 비상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글로벌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선도해 온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트럼프발 제재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중국으로의 AI 칩 공급이 차단될 경우, AI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결국 AI 핵심 메모리인 HBM 출하도 덩달아 감소할 수밖에 없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 정부는 인텔에게 중국에 ‘가우디’ 시리즈 등 AI 프로세서를 판매하려면 당국의 라이선스(허가증)를 먼저 받아야 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MD 역시 비슷한 통지를 받았다. AMD는 현지시간으로 16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시에서 “AI 칩 ‘MI308’이 미 정부의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인텔, AMD 등 주요 반도체 업체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 정부는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를 첫 번째 타깃으로 삼았다.
앞서 엔비디아는 지난 9일 미 정부로부터 AI 칩 H20을 중국에 수출할 때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14일에는 해당 규제가 무기한 적용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고도 했다.
미국의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잇따라 대중 수출 통제 조치를 적용 받게 된 것을 두고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통해 AI나 군사력 강화에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한 미 정부의 선제적 제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엔비디아측은 “미 정부는 이번 대중 수출 통제와 관련해 H20이 중국의 슈퍼 컴퓨터에 사용되거나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근거로 들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딥시크 CI(위)와 엔비디아 CI. <사진=연합뉴스>
대중 제재 수위를 높였던 미 정부의 불안이 기우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엔비디아 AI 칩을 최소 6만개 보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엔비디아의 H20은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가 강화된 이후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첨단 GPU(그래픽처리장치)로, 중국에 합법적으로 수출되는 반도체 중 최고급 사양 AI 칩이다. 연산 능력은 낮지만 고속 메모리 및 기타 칩과의 연결성이 뛰어나 슈퍼 컴퓨터 제조 시 반드시 사용되는 칩으로 알려졌다.
비록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 ‘블랙웰’에 견줄 수는 없지만, H20의 성능은 이미 입증된 상태다. 올해 1월 저가형 AI 모델을 선보이며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딥시크가 AI 모델 학습에 H20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딥시크의 AI 모델이 빠른 속도로 AI 서비스를 고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보고서가 언급한 대로 수만개의 엔비디아 AI 칩을 확보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보고서는 딥시크가 중국 정부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고 봤다. 딥시크가 사용자 데이터를 중국 당국에 전송하고, 중국 법률에 따라 정보 검열과 조작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딥시크는 미국 기술을 활용해 스파이 활동과 기술 절취를 할 수 있다”며 “이는 국가 안보 위협이다”고 규정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AI 반도체 수출길을 틀어막으면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대중 수출 제한 조치로 엔비디아는 2025년 회계연도 1분기(2~4월)에 55억달러(약 7조8254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재고, 구매 약정, 관련 충당금 등에 따른 비용이다.
AMD도 8억달러(약 1조1382억원)에 달하는 재고 및 계약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 봤다.

미국 엔비디아 보이저사옥. <사진=엔비디아>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로 미·중 양국 간 AI 칩 대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핵심 AI 메모리인 HBM을 공급하는 K-반도체의 고민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수출 규제가 엔비디아, 인텔, AMD 등 주요 반도체 업체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에도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장, 거대 AI 칩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서 향후 AI 반도체 수요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이는 AI 칩 구동에 필수인 HBM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AI 반도체의 중국 유입이 차질을 빚게 되면 AI 칩 출하량이 급감하게 되고, 이에 HBM 등 고성능 메모리 판매 또한 감소하게 된다. 결국 급성장 중인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이 대중 제재로 연쇄적으로 된서리를 맞는 셈이다.
전 세계 HBM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K-반도체가 특히 큰 피해가 우려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2.5%, 삼성전자 42.4% 등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합산은 94.9%로, 사실상 K-반도체가 대부분의 HBM을 생산·공급하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HBM을 중심으로 AI 반도체 생태계에 깊숙이 연결된 K-반도체의 향후 실적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일각에선 기존 주문 물량이 일부 조정됨에 따라 대중 제재에 따른 영향이 제한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장기화할 경우, AI 칩 시장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HBM은 주문형 제품이기 때문에 당장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으로는 AI 칩 시장 자체가 위축될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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