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4일 공식 출범…기업 관련 법안 추진 속도
상법 개정안·노란봉투법, 다시 재추진…기업들 “경영 훼손”
‘주 52시간제 예외’ 빠진 반도체법…“속 빈 강정”

이재명 대통령이 하루 전인 4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갖고 공식 출범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 또한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고된다. 당장, 이 대통령이 경제계에서 크게 우려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반도체 특별법 등을 추진한다는 뜻을 분명히하면서, 향후 법안 처리 과정에서 진통이 우려된다.
‘성장 절벽’에 빠진 국내 기업들은 안팎으로 경영 환경이 녹록치 않은 만큼, 민간 기업의 독립적인 경영 기조를 훼손하거나 연구개발(R&D)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규제 법안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5일 업계, 정계 등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기업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는 데 속도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재명 정부가 취임 초기, 경제회복을 위해 추진할 주요 법안은 기업들이 독립적인 경영환경을 어렵게 만들 소지가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가장 논란이 큰 법안은 상법 개정안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일반 주주 권익 보호’를 공약으로 내걸고, 상법 개정안 재추진 의지를 내비쳐 왔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모든 주주를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또한 △일정 비율 이상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단계적 확대 △대규모 상장회사 집중 투표제 활성화 등도 포함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앞서 지난 3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그러나 4월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가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제동이 걸렸고, 같은달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쳐져 최종 부결됐다.
이 대통령과 여당은 상법 개정안을 다시 처리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선 전날인 지난 2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당시 이 후보는 “(취임 후) 2~3주 안에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서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출범 초기, 상법 개정안을 다시 재추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주요 기업들은 노심초사 하고 있다.
특히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조항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으로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최근 경영권 분쟁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상법상 이사의 주주 이익 보호 의무가 도입될 경우,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이 경영권 공격을 통해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한 후 차익을 실현하고 떠나는 등 부정적인 행태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국내 상장사의 경영권 분쟁 공시는 2020년 216건에서 지난해 315건으로 증가했다. 또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경험한 87개 상장사를 규모별로 살펴보면 중소기업 59개사(67.8%), 중견기업 22개사(25.3%), 대기업 6개사(6.9%) 등으로 중견·중소기업이 전체 분쟁의 무려 93%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개정안에 포함된 이사의 주주 이익 보호 의무는 그 의미가 불분명해 주주들과의 분쟁을 늘리고 기업의 법적 예측 가능성을 감소시켜 경영 불안정성을 늘리게 될 것이다”며 “상법이 개정되면 특히 경영권 공격에 노출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들부터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써야 할 재원을 경영권 방어에 허비하게 되기 때문에 창업으로부터 중소·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생태계 육성과 경제 활력 제고는 더 요원해질 것이다”고 분석했다.
주주들의 무분별한 손해배상·배임죄 소송 남발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와 관련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되면 경영 판단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장하는 주주들의 소송 남발로 인수합병(M&A), 투자 등이 차질을 빚어 기업의 장기적 발전이 저해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2024년 11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 <사진=한국경제인협회>
지난해 재부결된 노란봉투법도 기업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 쟁의 행위 범위 확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 배상 청구 제한 등을 골자로 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첫날인 4일 노란봉투법 재추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으로 거론되는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이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를 확인한 것이다. 이 원장은 노란봉투법 등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 재의 요구권을 행사한 법안들의 재추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바로 할 것이다”고 답했다.
노란봉투법 처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소식에 국내 기업들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될 경우, 노조의 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산업 현장에서 노사 분규가 일상화 돼 큰 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백개의 협력 업체로 구성된 분야에서는 원청 업체가 협력 업체 노조의 교섭 요구나 파업에 대응하기 어려워져 결국 거래 단절, 해외 이전, 건설 중단이 초래될 공산이 크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경제계는 “노란봉투법은 우리 기업과 경제를 무너트리는 악법이다”며 “협력 업체 노조의 원청 업체에 대한 쟁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노조의 극단적 불법 쟁의 행위를 과도하게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제시한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까지 현실화 하면 기업 부담은 더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이 3월 20일 서울 강남구 SSAFY 멀티캠퍼스에서 열린 청년 취업 지원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 간 기술 경쟁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는 가운데, K-반도체의 첨단 칩 역량을 제고할 반도체 특별법 처리 여부에도 이목이 쏠린다.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인프라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해당 법안을 통해 첨단 칩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분석이 나오면서 업계는 조속한 국회 통과를 염원해 왔다. 그러나 여야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조항을 두고 공방을 벌이면서, 반도체 특별법 국회 통과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반도체 특별법의 필요성에 공감한 바 있다. 그러나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 조항을 법안에 명시하는 문제에 대해선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조항을 제외하고 반도체 산업 지원 내용만 담은 법안을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추진 중이다.
업계에선 반도체 R&D 종사자에 대한 주 52시간제 예외가 적극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K-반도체의 첨단 기술 개발 경쟁력을 담보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통상 2년이 소요되는 반도체 신제품 개발 과정 중 시제품 검증에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 중 R&D 핵심 인력은 시제품 집중 검증을 위해 3~4일 밤샘 근로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같은 이유로 미국·일본·대만 등 주요 경쟁국은 반도체 R&D 인력의 무제한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엄격한 주 52시간제로 인해 R&D 핵심 인력 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우리가 주 52시간제로 인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차질을 빚는 사이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3대 게임 체인저 분야 기술 수준 심층 분석’ 브리핑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반도체 분야 기술 기초 역량은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기술 선도국을 100%로 봤을 때,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로, 중국의 94.1%보다 낮았다. 한국의 고성능·저전력 AI(인공지능) 반도체 기술 분야는 84.1%인 반면 중국은 88.3%로 더 높았다. 전력 반도체 분야의 경우도 한국 67.5%, 중국 79.8%로, 중국이 우위에 있고, 차세대 고성능 센싱 기술 분야도 중국(83.9%)이 한국(81.3%)에 앞섰다.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은 한국과 중국이 74.2%로 같게 평가됐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K-반도체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면 정부 정책 지원의 근거가 될 반도체 특별법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며 “입법이 지연되면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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