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어리 처럼 불어나는 ‘트럼프 리스크’ … 삼성·SK, 美 사업 ‘안개속’

시간 입력 2025-09-09 18:00:00 시간 수정 2025-09-09 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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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대미 상호 관세 15% 적용…반도체 품목 관세 부과도 임박
트럼프, 바이돈 약속한 보조금 수십억달러 전면 재검토하기로
삼성·SK 중국공장 내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 반입도 불허
불법 체류·고용 단속 강화…국내 인력 적기 수급 차질 불가피
‘수십~수백조 투자’ 삼성·SK, 美 반도체공장 건설 제동 위기

미국에 수십~수백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거나 착공 예정인 K-반도체가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을 시작으로, 반도체 보조금 재검토, 대(對)중국 수출 통제 조치 등에 이어 최근 발발한 외국인 비자 문제까지 잇따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사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일각에서는 관세 폭탄을 떠안고 대미 반도체 투자를 중단하거나 줄이는게 더 낫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정도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미 현지에 대규모 반도체공장을 건립 중이거나 지을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공장의 외관은 이미 대부분 완성됐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춰 삼성은 내부 설비 반입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내년 말 가동 목표인 이 공장에서는 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이 생산된다.

또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370억달러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인공지능) 반도체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반도체가 미 현지에 반도체 생산 거점을 구축하고 나선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지난달 말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했던 이 회장과 최 회장은 미국과의 반도체 협력에 변함이 없음을 재확인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렇듯 삼성·SK의 두 수장이 미국 내 첨단 반도체공장 건립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중되는 트럼프 리스크로 K-반도체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 시작은 관세였다. 올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대미 상호 관세 25%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다행히 관세 유예 조치로 상호 관세를 바로 적용 받지는 않았다. 유예 조치가 끝나기 직전 지난 7월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통해 상호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존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무관세를 적용 받았던 만큼 15%의 상호 관세는 우리 기업에 적잖은 부담으로 급부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와 별개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6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집적 회로와 반도체에 대해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하면서 K-반도체의 근심은 급속도로 깊어졌다.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한국산 반도체의 인기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K-반도체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저하될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보편 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반도체 수출이 지금보다 4.7~8.3%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기준 106억8000만달러에 달했던 대미 반도체 수출 규모가 최대 8.3% 줄어든 97억9356만달러로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약 10억달러(약 1조4590억원)의 수익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다만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이 얼마인지는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또 ‘반도체 지원법(CSA)’에 따른 보조금을 재검토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배짱에 삼성·SK는 쩔쩔매고 있다.

올 6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CSA에 따라 미국에 투자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 제공키로 한 보조금 일부에 대해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 당시 결정된 CSA에 따른 보조금은 “과도하게 관대해 보인다”며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재협상을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 정부와 주요 반도체 업체 간 합의된 보조금이 다시 조정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기로 한 보조금이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K-반도체의 공격적인 대미 투자에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CSA에 근거해 삼성전자에 47억45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4억5800만달러의 보조금과 5억달러의 대출 지원을 확정 받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보조금을 다시 책정키로 하면서, 삼성·SK의 미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구축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삼성·SK를 대상으로 중국공장 내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 반입을 제한키로 한 것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중국 법인인 ‘삼성반도체유한공사’, ‘SK하이닉스반도체유한공사’, ‘인텔반도체유한공사’ 등 3곳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VEU는 별도의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적 지위를 뜻한다.

이번 조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수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VEU 명단에 제외된 인텔반도체유한공사도 SK하이닉스가 인수한 곳이어서 사실상 K-반도체만 트럼프발 제재의 타깃이 됐다.

미 상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소수의 외국 기업이 중국에 반도체 제조 장비와 기술을 허가 절차 없이 반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바이든 시대의 구멍을 메웠다”며 “이제 이들 (외국) 기업은 장비·기술을 수출하기 위해 허가를 얻어야 하므로 경쟁자들과 동일한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고문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고문 인스타그램 캡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VEU 명단에서 빠지게 되면서 중국 반도체공장 운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공장을,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지)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에서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가동 중이고, 다롄에 있는 인텔의 낸드공장에서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량도 상당하다. 삼성전자는 낸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당 수준의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는 삼성·SK가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들여오지 못하게 되면 이들 공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사양 칩만 생산하는 비핵심 생산 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공장은 한국공장에 비해 1~2세대 늦은 공정의 제품을 생산 중이다. 이에 주기적으로 생산 능력 확대 및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한 반도체 장비를 적기 수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트럼프발 제재로 향후 K-반도체의 중국공장 경쟁력은 약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미 정부가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불법 체류·고용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미국에 첨단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SK의 미국 사업에도 당장 비상등이 켜졌다. 삼성·SK 소속 직원뿐만 아니라 협력 업체 소속 직원들까지 미 반도체공장 구축을 위해 필요한 인력을 적기에 수급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돼서다.

미국 이민 당국이 공개한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불법 체류·고용 단속 현장. <사진=연합뉴스>
미국 이민 당국이 공개한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불법 체류·고용 단속 현장. <사진=연합뉴스>

K-반도체의 미 현지 반도체공장 건설 계획이 잇단 트럼프 리스크로 좌초될 위기에 봉착하면서 “이럴 거면 차라리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는 게 나았다”는 푸념이 업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향후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미국의 불확실성이 우리 기업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미 현지에서 빗발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의 아리우스 데어 공보국장은 현지시간으로 8일 KEI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최근 미 이민 당국의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단속을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추방’과 ‘외국인 투자 유치’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 목표가 현장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어 국장은 “미국은 FDI(외국인 직접 투자)와 이에 수반되는 첨단 제조업을 원하지만, 공장에 특화된 전문성을 단기간에 배치할 수 있는 합법적이며 안전한 경로를 조금만 제공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엔지니어 같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한국의 기업들을 미국으로 동반해 미국 노동력을 교육하고 현지화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며 “공장이 어느 정도 자리 잡기까지는 생산라인을 아는 한국 기술자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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