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재벌의 흥망성쇠]① “항공·건설 ‘호령’, 재계 7위 등극”…‘호남 맏형’, 금호아시아나의 ‘추락’

시간 입력 2025-10-24 07:00:00 시간 수정 2025-10-28 08:56:06
  • 페이스북
  • 트위치
  • 링크복사

1946년 광주에서 택시 2대로 시작해 버스운송으로 영역 넓혀
‘타이어·건설·항공’ 삼각편대 완성…호남 대표기업으로 대기업 반열
박삼구 회장 취임 후 대우건설·대한통운 무리한 M&A…추락의 시작
박삼구·박찬구 형제 갈등…금호석유화학 계열분리로 ‘균열’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에 내주며 대기업 지위 박탈  

[편집자주] 호남을 기반으로 기업들은 금호의 몰락과 중흥의 부상 이후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금호에 이어 호남의 신흥 대표기업으로 부상한 호반그룹이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며 자산 70조원대 대기업으로 도약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별 기업의 단순한 기업 인수합병을 넘어,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대표 기업이 한국 재계의 구도와 국가 기간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지에서는 금호에서 중흥, 그리고 호반으로 이어지는 호남 대표기업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특히 한진칼 인수에 나서고 있는 호반의 기회와 리스크도 짚어 보고자 한다.

과거 타이어에서 항공, 건설, 물류 대표기업으로, 호남을 대표해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이제는 핵심 계열사를 대부분 정리한채 과거의 영광만을 남겨두고 있다. 단숨에 국내 재계 7위까지 올라서며 주목을 받았던 금호아시아나의 몰락은 내부 자금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사업확장과 형제 간 경영권 분쟁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 택시 2대로 시작한 금호아시아나 출범으로 날개 달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출발은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1년 전남 나주시에서 태어난 금호(錦湖) 박인천 창업주는 해방 직후인 1946년 택시 2대로 광주에서 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현 금호고속)을 설립하며 버스운송사업에 진출했다.

버스운송업으로 시작한 금호는 1960년 삼양타이어공업(현 금호타이어)을 설립하며 타이어 시장에 진출했고, 이는 지역 기반의 사업을 전국 사업으로 확장하는 그룹 성장의 기초가 됐다. 이어 1967년에는 제일토목건축(현 금호건설)을 설립하며 건설업에도 본격 가세한다.

금호는 이후 1988년, 정부의 항공 산업 개방 정책에 발맞춰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며 기업 부흥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아시아나항공은 출범 초기부터 대한항공의 독점 구조에 도전하며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 시켰고, 곧이어 국제선까지 노선을 넓히며 국내 2위 항공사로 자리 잡았다.

이후 금호는 타이어, 건설, 항공 등 성장을 위한 삼각편대를 완성, 1990년대 말에는 명실상부 종합 대기업으로 급부상 했다. 금호건설, 금호산업, 금호고속,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계열사들이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형성했고, 특히 호남 출신 기업이라는 정체성은 지역민의 자부심으로 작용했다.

◇ 대우건설·대한통운, 거침없는 M&A…“새우가 고래를 삼켰다, 추락의 서막

2000년대 들어 금호아시아나는 더욱 더 공격적인 성장 전략을 선택했다. 특히 2002년 9월 박인천 창업주의 3남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그룹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공격적인 사업확장은 더 가속화 됐다.

박삼구 회장은 먼저 2006년 대우건설 인수에 나섰다. 산업은행 등 18개 금융기관에서 약 3조원을 차입해 6조400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대우건설 M&A에 쏟아 부었다. 이어 2008년에는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되던 대한통운을 4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국내 건설·물류 사업을 대표하는 이들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산총액 규모는 급격히 불어났다. 2007년 4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금호아시아나는 자산총액 22조9000억원으로 동일인(총수)이 있는 대기업 중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GS에 이어 재계 7위로 올라섰다. 당시 라이벌인 한진그룹(자산총액 22조2000억원)을 처음으로 제치고 양적 성장을 일궈낸 것이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금호아시아나는 자산총액 규모에서 한진을 줄곧 앞섰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는 이처럼 금호아시아나의 위상을 단숨에 재계 7위까지 끌어올렸지만, 그만큼 재무 부담도 가중됐다. 실제 두 건의 초대형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입으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8년 전 세계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위기는 더 가속화 됐다. 당장, 부채 상환 부담이 커졌고, 시장 유동성은 급격히 위축됐다.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를 받아온 무리한 M&A가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금호는 2010년 대우건설을 인수 4년 만에 한국산업은행에 매각했고, 대한통운도 인수 3년 만인 2011년 CJ그룹에 넘겨야 했다. 이는 단순한 자산 매각을 넘어, 그룹의 성장 기반 자체를 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 박삼구·박찬구 형제의 갈등, 그룹의 분열

M&A 실패에 따른 혹독한 수업료를 지불한 이후에도 악재가 이어졌다. 바로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다. 

박삼구 회장과 동생인 박찬구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당시 의견이 갈렸다. 박삼구 회장이 적극적으로 대우건설 인수를 추진했지만, 박찬구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룹 경영 정상화를 두고도 형과 동생은 충돌했고, 결국 2015년 금호그룹은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와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으로 계열분리됐다.

◇ 아시아나항공과의 이별…금호아시아나, 날개마저 잃다

금호아시아나의 마지막 자존심은 아시아나항공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유지하기 어려웠다. 2019년 다시 불거진 유동성 위기로 금호아시아나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고, 우여곡절 끝에 2020년 한진이 인수에 나섰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 항공업계가 위기를 맞은 가운데에서도, 결국 2024년 12월 아시아나항공은 경쟁사인 한진그룹 대한항공에 최종 인수됐다.  이와 함께, 한때 재계 순위 7위, 자산 규모 40조 원에 달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대기업군에서 탈락해 중견기업으로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금호고속, 금호건설 등을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 호남을 대표하는 맏형 기업의 위상은 이미 접은지 오래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 2월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고 대기업군에서의 이탈을 공식화 했다.

금호아시아나의 성장과 추락은 무리한 확장과 차입경영, 그리고 내부 갈등이 건실하던 대기업을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동시에 지역 기반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나아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같이 던지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윤선 기자 / yskk@ceoscore.co.kr]

관련기사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