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100% 관세 내거나 미국서 생산해야”
美, 반도체 관세 부과 카드 꺼내…‘메모리 투톱’ 삼성·SK 위기
K-반도체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마이크론에 패권 내줄 수도
삼성·SK, 미 현지에 HBM 등 메모리공장 추가 투자 여력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반도체 관세 리스크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당시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관세 ‘최혜국 대우’를 약속 받았던 게 무색하게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 현지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을 시 100%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가운데, HBM(고대역폭메모리), D램, 낸드플래시 등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근심도 커지고 있다.
두 업체 모두 미국 현지에 메모리 제조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 내 칩 생산 시설을 보유한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에 AI 메모리인 HBM 패권까지 내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최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 뉴욕주 시러큐스 인근에서 열린 마이크론 신규 반도체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기업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며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이 특정 기업을 지목하진 않았으나 한국과 대만이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두 국가에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지난해 3분기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34%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는 33%를 기록했다. SK·삼성의 시장 점유율 합산은 67%로, K-반도체가 전 세계 D램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BM의 경우 K-반도체의 입지는 더욱 독보적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지난해 3분기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무려 57%에 이르렀다. 삼성전자는 22%였다. 이로써 K-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은 79%나 됐다. 사실상 전 세계에 공급된 HBM 5개 중 4개는 ‘메이드 인 코리아’인 것이다.

그러나 미 정부의 반도체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100% 관세 부과로 인해 K-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이에 따른 실적 부진 심화, 삼성·SK의 시장 지배력 축소 등 여러 악재에 직면할 수 있다. 심지어 삼성·SK가 ‘만년 3등’ 마이크론에 메모리 패권을 내주는 초유의 사태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반도체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면 가장 이득을 보게 될 곳은 마이크론이다. 현재 마이크론은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해외 뿐만 아니라 미 현지 생산 시설에서 D램, 낸드 등 메모리를 양산하고 있다. 이 중 미국 내에서 만든 메모리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서 자유로운 만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한 이점을 가진다.
또한 미국 내 생산 능력 확대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HBM 등 AI 메모리를 제조하기 위해 미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첫 번째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2027년 중반부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이다호주에 들어서는 두 번째 공장은 내년에 착공해 2028년 말 가동 예정이다. 이번에 착공식을 한 미 뉴욕주 공장에는 총 1000억 달러가 투입됐다. 해당 공장은 2030년부터 차세대 메모리를 양산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달리, 현재 미 현지 공장이 없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제조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주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공장의 외관은 이미 대부분 완성됐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이에 맞춰 내부 설비 반입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삼성은 2030년까지 370억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후공정 제조 설비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인공지능) 반도체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K가 이처럼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고 있지만, 정작 메모리 양산 시설은 아직 전무한 실정이다. K-반도체는 핵심 메모리 생산 거점을 국내로 한정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들어서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선 이제라도 미 현지에 메모리공장을 짓는 방안을 고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삼성·SK가 이미 국내에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728만㎡(약 220만평) 규모의 부지에 초대형 시스템 반도체 국가 산단을 건립키로 했다. 투자 규모는 약 360조원에 이른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삼성은 지난해 12월 LH와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LH는 산단 예정지 내 토지 소유자들과 토지 및 지장물(건물, 공작물, 수목 등)에 대한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원삼면 일대 415만㎡(약 126만평) 규모의 부지에 구축되는 메가급 반도체 산단으로, SK의 첨단 AI 메모리 양산을 주도할 핵심 생산 거점이다. 약 600조원이 투입되는 이 곳에는 총 4기의 팹이 구축된다. 팹 1기가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M15X 6기와 맞먹는 규모임을 감안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기 팹 공사 첫 삽을 뜬지 약 11개월이 지난 현재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특수 약품 등을 공급해주는 CUB(센트럴유틸리티빌딩), 반도체가 생산되는 핵심 생산 시설인 팹, 수자원을 재사용하는 데 필요한 WWT(워터웨이스트트리트먼트), 임직원 사무동 등 주요 시설들이 어느 정도 윤곽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엔비디아 등 주요 빅테크가 첨단 AI 반도체에 한국산 HBM 대신 가격이 저렴한 마이크론 제품을 탑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결국 ‘HBM 투톱’ 삼성·SK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를 중심으로 우려가 커지자 청와대까지 나서서 사태수습에 나섰다. 청와대는미국의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 범위가 확대되는 기류와 관련해 “(한·미가 합의한) ‘불리하지 않은 대우’ 원칙에 따라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하도록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는 조만간 산업통상부 등 관련 부처로부터 보고 받고,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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