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자본확충 ‘올스톱’…韓 금융안정화 골든타임 놓치나

시간 입력 2022-12-14 18:00:40 시간 수정 2022-12-14 18: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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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톤자산운용, 태광산업 유상증자 반대…이사회 소집 연기
흥국생명 주주배당 및 성장세 지속…“지분관계 아닌 투자 효과 따져봐야”
韓 금융시장 안정화 우선…“단기차익 노린 사모펀드의 경영참여 경계”

흥국생명 사옥 전경.<사진 제공=흥국생명>
흥국생명 사옥 전경.<사진 제공=흥국생명>

태광그룹의 모회사 태광산업을 통해 자본을 확충하려던 흥국생명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사모펀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반대 의견을 내비치면서다. 

이에 따라 콜옵션 번복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되길 바라던 금융시장과 금융당국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팽배해지고 있다. 이번 이사회 개최 연기로 한국 금융안정화 향방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구도로 흐르는 모양새다.  

◇흥국생명 유상증자, 사모펀드 반대로 불발…금융안정화 시계 흐려져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이날 오전 예정됐던 이사회를 돌연 연기했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4000억원 규모의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은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날 이사회 결정이 시장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걸어왔다. 그러나 논의조차 하지 못하면서 금융안정화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흥국생명이 태광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자칫 그룹의 위기는 물론 한국 금융시장 전체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흥국생명은 지난달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금리 인상 등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채권시장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금융당국 권고로 콜옵션을 행사하는 쪽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은 환매조건부채권(RP) 4000억원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흥국생명을 긴급 지원했다. 다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흥국생명의 처지는 바뀌지 않았다. RP는 다시 되산다는 ‘환매’ 조건을 붙인 만큼, 보통 만기가 최대 1년으로 짧은 편이다.

흥국생명은 이달 초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정관을 변경, 전환주식 발행을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 태광그룹이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셈이다. 자본확충을 통해 내년 도입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에도 대비하겠다는 계획도 내비쳤다.

태광산업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태광산업이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6251억원으로 지원여력은 충분하다는 평이다. 금융당국 역시 그룹 차원의 지원을 통해 훼손된 채권시장 신용도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해당 안건을 다룰 태광산업 이사회는 주주가치 훼손과 상법 위반을 명분으로 내건 트러스톤자산운용(지분 5.8% 보유)의 반대로 열리지 못했다. 

1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태광 “흥국생명 매력적인 투자처…금융시장 신뢰도 회복해야”

태광그룹은 금융위기 해결과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모기업인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흥국생명 증자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대규모 자금지원으로 롯데건설발(發) 유동성 위기 확산을 차단한 롯데그룹과 비슷한 사례다. 롯데건설은 최근 차입·유상증자 방식으로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롯데 계열사들로부터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받은 바 있다.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에 대한 5000억원 지원 당시에도 주주가치훼손 논란이 일었으나 10월 20일 13만7000원대 까지 후퇴한 주가는 이후 강한 반등을 보이며 12월 8일 기준 18만6000원대까지 올라섰다. 시장의 판단은 그룹 전체의 안정을 계열사 안위와 동일시하는 선택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태광그룹은 흥국생명이 신용등급과 보험금 지급 능력 모두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우량기업인 점도 강조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시 시장수익률을 상회하는 6% 후반의 안정적인 배당 수익, 공정가치 재평가에 따른 보유지분 가치 상승 등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흥국생명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거둬들인 순이익은 159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24억원)보다 11.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5.85%로 2.19%포인트, 운용자산이익률은 3.65%로 0.38%포인트 각각 상승했다. 지급여력(RBC)비율은 154.3%로 금융당국 권고치를 상회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기 보다는, 향후 기대되는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강희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자본수혈이 필요해 지원해주는 취지가 크긴 하나 생명보험사에 투자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돌을 던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며 “생보업 투자에 따른 효과와 향후 전망치를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재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전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은 “어려우니까 투자하지 말자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며 “이번 유상증자 쟁점이 ‘지분 관계’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경영 관여하는 행동주의 펀드…목적성 따져봐야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국내 대표 행동주의 펀드로 꼽힌다.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반대한 데 앞서, BYC 오너 일가의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여부 확인을 위해 법원으로부터 이사회 의사록 열람 및 등사 신청을 허가받기도 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 목적으로 투자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주주서한 발송부터 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분쟁, 소송 제기 등 행동 범위도 넓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참여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수익을 내야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단기적인 주가 부양에 급급해 기업의 경영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로 꼽히는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과거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분을 매입하고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과 막대한 규모의 배당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로 인해 2018년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고, 그룹의 순환출자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은 과거 외국계 펀드와 달리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면서도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업 경영보다 단기적인 주가 부양을 노리고 경영에 참여하는지 따져볼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기율 기자 / hkps099@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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