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찾는 기업들, 경기침체 기업 자금 조달 수요 확대
고금리 장기화에 회사채 발행 시장은 냉각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 통한 자금 확보 나서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유가증권담보대출이 지난해 11조원을 돌파했다. 유가증권담보대출은 통상 기업이 이용하는 대출로 주식이나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유가증권을 보유한 기업이 은행에서 이를 담보로 대출 받는 것을 의미한다.
유가증권담보대출이 최대 규모로 확대된 건 고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라 회사채 발행 매력이 떨어지면서 은행을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 수요가 커진 영향이다. 무엇보다 경기 불확실성에 따라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예비 자금 확보에 나선 기업들이 그만큼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5대 시중은행(KB국민·하나·신한·우리·NH농협은행)의 유가증권담보대출은 총 11조82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유가증권담보대출을 취급하는 국내 은행 전체 규모의 74%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5대 시중은행 대부분 전년 동기보다 유가증권담보대출이 대폭 늘었다. 신한은행은 2022년 3분기 2142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4220억원으로 97% 늘었다. 규모는 여타 시중은행에 견줘 현저히 작지만 증가율은 가장 높았다.
국민은행은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한 6조6877억원으로 시중은행 중 유가증권담보대출 규모가 제일 컸다. 이어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0.9% 17.8% 늘었다.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감소했으나 감소폭은 0.1%로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은행에서 취급하는 유가증권담보대출은 정규 담보가 아닌 견질 담보 성격을 갖고 있다. 부동산이나 동산 등 정식 담보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핸 담보로 주로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은행은 자산가치 하락에 대비해 담보비율을 설정하게 되는데 담보로 맡긴 자산 평가액이 담보유지비율 이하로 떨어지면 금융기관이 부족한 담보금액을 추가로 맡기도록 요구할 수 있다. 대기업은 보통 코스피에 상장돤 자사주를 담보로, 중소기업은 코스닥에 상장된 자사주를 활용해 담보비율을 높이려고 한다.
유가증권담보대출은 2021년부터 꾸준히 증가했지만 2022년 하반기 들어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2022년 2분기 말 7조원대였던 대출 규모는 4분기 말 8조원을 기록했고 지난해 들어 3개월 만에 9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2분기에는 11조원을 돌파한 뒤 3분기에도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다.
유가증권담보대출 규모가 확대된 시점은 회사채 발행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시기와 맞물린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던 2022년 하반기부터 회사채 발행 금리가 시장금리 대비 높은 수준을 기록한 데다 목표했던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하면서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회사채 발행 매력이 떨어지자 기업대출과 이를 기반으로 한 유가증권담보대출이 늘었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은 지난해 1월부터 연속 증가세를 보이며 전년 대비 63조원 늘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기업대출은 기업들이 은행채 발행규모 확대와 금리 상승 영향으로 회사채 발행 대신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을 선호하면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증권담보대출 증가는 기업대출 수요가 증가하면서 유가증권을 견질담보로 설정한 기업이 많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기 불확실성과 영업실적 하락 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담보인정비율이 낮은 유가증권담보대출을 동원해서라도 긴급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한 시증은행 관계자는 “유가증권담보대출은 대기업이 주로 활용하는 대출”이라며 “특히 지난해엔 기업대출 중에서도 대기업 대출이 크게 확대되면서 유가증권담보대출 규모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들어 대기업 대출 수요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가증권담보대출 규모가 지난해처럼 가파르게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
우리금융연구소는 “대기업 대출수요는 지난해 14.7%에서 올해 4.9%로 둔화되는 반면 고금리 기간 대기업 대비 크게 위축된 중소기업 대출의 성장세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CEO스코어데일리 / 안은정 기자 / bonjour@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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