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대미 반도체 투자 ‘진퇴양난’… 최태원 미국행, 트럼프 행정부와 담판 벌이나

시간 입력 2025-02-20 07:00:00 시간 수정 2025-02-20 15:55:00
  • 페이스북
  • 트위치
  • 카카오
  • 링크복사

트럼프, 반도체 관세 25% 혹은 그 이상 부과 예고
‘보조금 재검토’도 악재…삼성·SK, 대미투자 '전전긍긍'
수십조 대미 투자 헛일 되나…K-반도체 딜레마
최태원 미국행…트럼프 행정부 인사 만날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에 25% 혹은 그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 리스크가 빠르게 고조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CSA)’에 따른 보조금 지급 조건과 지원 규모 등을 재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키로 한 K-반도체 진영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반도체 관세를 어느 정도로 부과할 것이냐는 질문에 “25%, 그리고 그 이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세는 1년에 걸쳐 훨씬 더 인상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관세 부과 시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4월 2일께 자동차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한 만큼 반도체 관세도 비슷한 시기에 부과될 전망이다.

국내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관세 폭탄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면서 글로벌 칩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무역협회(무협)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 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33억7000만달러 대비 3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K-반도체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미 정부의 대중 관세에 따른 반사이익 덕분이다. 앞서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산 반도체에 25% 관세를 적용했다. 지난해 5월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반도체 관세율을 50%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중국 전자 제품의 보안 문제도 한국산 반도체의 수출 확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 미국 내 주요 대학,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서버 구축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산에서 한국산으로 대거 교체한 바 있다.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열풍도 한몫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날로 고도화되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첨단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흐름에 수혜주로 부상한 제품이 바로 HBM이다.

HBM의 인기는 삼성·SK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K-반도체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3년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삼성전자도 38%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삼성·SK의 점유율 합산은 91%로, 사실상 K-반도체가 전 세계 HBM 공급을 전담하고 있다.

한국산 반도체의 인기가 고공행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면 K-반도체의 경쟁력은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보편 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이 지금보다 4.7~8.3%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는 “우리는 그들(기업들)에게 (미국에 투자하러) 들어올 시간을 주고 싶다”며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관세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약간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4월 2일 이후 바로 관세를 부과하기보다는 관세 발효까지 기업들에게 일정 시간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옮길 시간적인 여유를 부여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들 일부가 자신에게 연락해 왔다”며 “그들은 관세와 세금, 인센티브 등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미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통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대미 투자를 유도하고 미 현지 첨단 공장 유치에 나선 가운데, 삼성·SK도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거점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K-반도체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약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K가 미국에 첨단 칩 생산 시설을 완공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천명한 반도체 관세 부담을 단숨에 덜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K-반도체의 미 현지 반도체공장 구축을 방해하는 변수가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CSA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을 재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3일 트럼프 행정부가 CSA에 따라 미국에 투자한 반도체 기업에 지급하기로 한 정부 보조금에 대해 재협상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는 주요 반도체 업체별로 기존의 보조금을 책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요구 사항을 다시 검토하고, 보조금 지급 규모나 특정 조건 등을 변경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백악관이 CSA 보조금 지급 조건에 대해 특히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조건은 바이든 행정부가 요구했던 것으로, 노조 가입 노동자 고용,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저렴한 자녀 보육 서비스 제공 등을 포함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9일 미국 워싱턴 D.C.로 출국하기 위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들어서며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9일 미국 워싱턴 D.C.로 출국하기 위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들어서며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트럼프발 보조금 재조정 소식을 접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초긴장 상태다. 지난달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기존 합의 내용을 뒤엎고 특정 조건들을 재협상하기 위해 보조금 지출 중단을 무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재협상 과정에서) 반도체 보조금 지출 일부를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당장, 반도체 보조금 지급 중단이 현실화하면, K-반도체의 미국 내 생산라인 확대는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미 지급이 결정된 수천억~수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지 못할 경우, 미 현지 공장 착공 및 생산 지연 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한 상황이다. 반도체 관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미 반도체공장 구축을 서둘러야 하지만, 또 CSA에 따른 보조금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해 당초 생산라인 확장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일각에선 수십조원을 쏟아 부어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거점을 만들고 있는 삼성·SK가 트럼프 행정부의 배만 불리고, 실익은 거의 얻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커지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즉각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 회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 D.C. 출장길에 오르며 “위기도 기회도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 등과 만날 것이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