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근로자 구금 후폭풍] ① “‘쇠사슬 구금’ 근로자 돌아왔지만”… 현대·LG·삼성·SK, 대미 투자 ‘급 브레이크’

시간 입력 2025-09-12 17:40:00 시간 수정 2025-09-15 0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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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민 당국 “외국 기업 공장 현장 단속 강화할 것” 압박
‘수십~수백조원 투자’ 韓 기업들, 미국 사업 진행 차질 우려
전문 인력 수급 ‘적신호’…비자 문제 해결 대책 마련 시급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됐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 근로자 300여 명이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 왔다. 이들이 안전하게 귀국하면서, 미국에서 한국 근로자 수백명이 구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태가 불러올 후폭풍은 더 거세지는 모양새다. 수십~수백조원을 투자해 미 현지에 공장을 짓고 있는 다수의 국내 기업들 사이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이고 좌충우돌적인 정책으로 미국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 졌다는 입장이다.

한국인 316명과 외국 국적자 14명(중국 10명·일본 3명·인도네시아 1명) 등 근로자 330명을 태운 전세기는 지난 12일 오후 3시 26분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미국을 찾은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김동명 LG엔솔 대표 등도 전세기를 타고 함께 귀국했다.

한국 근로자 300여명이 무려 일주일 간 미국 조지아 수용소에 구금된 이번 사태는 정부와 현대차, LG엔솔의 발빠른 대응으로 일주일만에 마무리 됐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앞서 지난 7일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정부 부처와 경제단체, 기업이 한마음으로 신속히 대응한 결과,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의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미 이민 당국이 여전히 외국 기업의 공장 건설 현장을 적극 단속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고, 무엇보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한국에 쇠사슬 구금을 단행한 미국에 대미 투자를 이어가는 게 적정한가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 체류·고용 단속으로 구금됐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 현장 근로자들이 애틀랜타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9월 11일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 체류·고용 단속으로 구금됐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 현장 근로자들이 애틀랜타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9월 11일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 시설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 이민 당국자로부터 단속의 강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란 예고가 나오면서, 국내 기업들은 향후 ‘제2, 제3의 쇠사슬 구금’ 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미 현지에서 공장 건설 현장에 투입된 한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정부의 단속이 강화되면 현지 공장 건설에 필요한 국내 인력 파견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는 공사를 지연시키는 악재와 진배없다. 공사가 늦어지는 만큼 비용은 크게 증가하게 되고, 시장 수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도 어려워진다. 결국 납품 차질이 불가피해지면서 신뢰도 하락과 같은 무형의 손실도 피할 수 없게 된다.

먼저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현대차와 LG엔솔이 극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현대차와 LG엔솔이 약 6조원을 투입해 건설 중인 합작 공장은 연내 준공 후, 내년 초부터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현재는 초기 설비 구축 단계로, 다수의 한국 엔지니어와 숙련 인력이 투입됐다. 그러나 이번 미 이민 당국의 단속으로 근로자 300여 명이 체포·구금되면서 공사 일정이 상당 기간 늦춰지게 됐다.

전기차 배터리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경희 LS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LG엔솔은 내년 초 양산을 목표로 했지만, (이번 사태로) 공사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내년부터 예정된 현대차그룹에 대한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판매량이 하향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다만 아직 공장이 가동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당장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들 업체의 대미 투자가 여러 건이라는 점이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HI-GA(현대차·LG엔솔 합작 배터리공장)에 43억달러를 투자한 현대차와 LG엔솔은 해당 공장에 20억달러를 추가 투입키로 했다. 또한 LG엔솔은 미 애리조나주에 32억달러 규모의 단독 배터리공장을, 미 오하이오주에 혼다와 30억달러 규모의 합작 공장을 건설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주 배터리공장 조감도.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애리조나주 배터리공장 조감도. <사진=LG에너지솔루션>

비단 현대·LG뿐만이 아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삼성·SK 등 굴지의 대기업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삼성SDI는 미 인디애나주에 스텔란티스·GM(제너럴모터스)과 각각 합작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들 공장에 투입된 자금은 74억달러에 달한다.

SK온은 미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114억달러를 투자해 포드와의 합작 배터리공장을 짓고 있다. 또 현대차와 함께 미 조지아주에 50억달러 규모 합작 공장도 짓고 있다.

수십~수백조원을 쏟아 부어 미국 현지에 대규모 공장을 건립 중이거나 지을 예정인 K-반도체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공장의 외관은 이미 대부분 완성됐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이에 맞춰 내부 설비 반입도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내년 말 가동 목표인 이 공장에서는 미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차세대 AI6 칩이 생산될 예정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누적 370억달러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연구개발(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4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HBM 등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 AI(인공지능) 반도체용 AVP(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SK하이닉스가 최초다. SK는 인허가 등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미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를 추가 투자키로 결정했고, LS전선 약 6억8000만달러, CJ제일제당 약 5억달러 등 주요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단행한 상태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고문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고문 인스타그램 캡처>

이렇듯 다수의 국내 기업들이 거액을 쏟아 부어 미 현지에 공장을 건립하거나 지을 예정인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문제가 미국 사업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부상하고 있다.

필요한 인력을 적기에 수급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미국 비자 문제에 저촉되지 않을 수 있는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인력이 미 현지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려면 미국 정부로부터 전문직 취업 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E2)를 취득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비자 발급에만 수개월이 소요되고, 실제 비자를 받는 인원도 제한적인 실정이다. 이에 많은 기업들은 회의 참석이나 계약 목적인 단기 상용 비자(B1)나 ESTA를 통해 미국 출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 등 고난도 기술을 요하는 업계는 주재원으로는 현지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국내 숙련 인력들이 수시로 미국을 오갈 수밖에 없는데, 현 비자 체계로는 B1이나 ESTA가 최선이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최근 한·미 양국이 합의한 관세·통상 협상 결과로, 향후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국내 전문 인력의 비자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국내 산업계에선 우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미국 특별 취업 비자를 신설해야 할 필요성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현재 최대 1만5000개의 E4 발급을 골자로 한 ‘한국 동반자 법안’이 민간 주도로 2013년부터 미 의회에 계류돼 있지만, 근 10년이 넘도록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한·미 간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산업통상자원부 및 관련 기업과 공조 하에 대미 프로젝트 관련 출장 인력의 비자 체계 점검·개선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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