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 논쟁 30년]① 지배구조 개선 혹은 관치의 귀환…‘직접 개입’에서 ‘주주권’으로

시간 입력 2026-04-20 17:40:00 시간 수정 2026-04-20 17: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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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통제→간접 개입…30년 걸쳐 변한 관치금융 역사
금융지주,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 안착 속 권한 집중 문제
당국, 국민연금 주주권 확대 논의…관치금융 논쟁 재점화

위기 때마다 강화된 정부의 역할은 금융시장 안정을 이끌었지만, 시장 자율성과의 긴장도 함께 키워왔다. 기관투자자가 수탁자 책임을 다하기 위한 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와 국민연금의 주주권 확대까지 맞물린 지금, 관치와 자율의 균형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성과 뒤에서 관치와 자율의 경계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2회에 살펴본다. <편집자 주>

외환위기 이후 30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 금융산업은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는 듯했지만, 정부의 영향력은 형태만 바뀐 채 지속돼 왔다. 구조조정과 위기 대응 과정에서 강화된 정책 개입은 점차 인사와 지배구조 영역으로 확장됐고, 최근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와 맞물리며 ‘관치금융’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위기 때마다 반복적으로 호출된 정부의 역할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성과를 남겼지만, 동시에 시장 자율성과의 긴장 관계도 심화시켰다.

다만 현재 상황은 과거와는 다소 다른 맥락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과거 개입이 주로 부실 정리와 구조조정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지배구조 투명성과 주주 가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처럼 금융시장 안정과 공공성 확보라는 과제와 함께, 시장 자율성과의 균형을 둘러싼 논의도 지속되는 모습이다.

직접 통제에서 간접 개입으로…관치 방식의 변화

금융지주 체제가 자리 잡기 이전, 한국 금융산업의 중심에는 은행이 있었다. 은행이 어떤 산업과 기업에 자금을 배분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성장과 도태가 좌우됐지만, 당시 은행은 독립적인 의사결정 주체라기보다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1980년대까지도 시중 유동성과 자금 배분 방향은 정책 판단에 따라 결정됐으며, 은행장 인선 역시 당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같은 구조는 1961년 제정된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을 통해 제도적으로 뒷받침됐다. 해당 법은 금융기관의 경영과 인사 전반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가능하게 하며 한국형 관치금융의 기반을 형성했다.

이후 1980년대 금융 자율화 정책과 함께 은행 민영화가 추진됐지만, 소유가 분산된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통제력은 여전히 정부와 관료사회에 남아 있었다. 은행장 인사를 둘러싼 영향력 역시 지속되며 ‘보이지 않는 관치’가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과적으로 권한은 집중된 반면 책임 주체는 불분명한 구조가 형성됐고, 정책 중심의 대출 관행은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 관리 기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은행권 부실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금융당국은 부실 금융기관 정리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과제를 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다수의 은행과 종합금융사, 투자신탁회사 등이 퇴출되거나 통폐합됐고, 은행권에서는 대규모 인력 감축과 점포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됐다. 이 시기에는 시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사실상 금융사의 존폐를 좌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평가와 함께, 정부 주도의 금융 운영이 부실을 키운 배경이 됐다는 지적도 병존한다.

금융시장 안정 이후 2000년에는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시행되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고, 금융지주 체제가 공식 출범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지주회사 중심 체계를 통해 규모의 경제와 경영 효율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으며, 전문경영인 중심의 운영 구조도 점차 자리 잡았다.

다만 금융지주 체제는 제도적으로 관치금융을 청산하려는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주 감시 기능은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 당국이 주요 주주로 존재하는 구조 속에서 지주 회장 등 핵심 인사가 정책적 시각과 완전히 분리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소재 한 빌딩, 금융노조 지부에서 ‘관치금융 중단’ 펼침막을 내걸었다. <사진=이지원 기자>

금융지주, 전문경영인 체제 안착…강력한 리더십의 명암

2000년대 초반 국내 금융산업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구조조정 국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금융회사의 운영 방식도 ‘관리’에서 ‘경영’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의 출발점은 금융지주 체제 도입이었다. 2001년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잇따라 출범하며 은행 중심 구조는 지주회사 중심으로 재편됐다. 은행·증권·보험을 아우르는 복합 금융그룹 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의사결정 구조 역시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정비됐다.

과거 정부가 은행 인사와 경영 전반에 깊이 관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사회와 경영진 중심의 운영 체계가 점차 자리 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크게 부각됐다. 그룹 전체 전략을 총괄하고 계열사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중심 축으로서 회장의 리더십이 경영 성과에 미치는 영향도 확대됐다.

당시 금융지주들이 직면한 과제는 명확했다. 글로벌 금융사와의 격차를 좁히고 재편된 시장 환경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일관된 전략 집행이 요구됐고, 자연스럽게 경영진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러한 흐름은 전문경영인 체제 정착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기 전략 추진이 가능해졌고, 조직 운영의 연속성도 확보됐기 때문이다.

다만 소유가 분산된 금융지주 구조에서는 경영진에 대한 견제 장치가 충분히 작동하는지를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대주주의 직접 통제가 없는 만큼 회장에게 전략과 인사 권한이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외부 환경 역시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서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며 ‘친정부 인사’ 논란이 제기됐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지주라는 특성상 경영진 선임이 순수한 시장 논리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사례들은 금융지주 체제가 제도적으로는 시장 중심 구조를 갖췄음에도 실제 운영에서는 여전히 외부 변수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금융산업의 공공성과 당시 정치·경제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결국 2000년대는 금융지주 체제를 기반으로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 구조가 자리 잡은 시기로 평가된다. 정부의 직접 개입은 줄어들었지만, 그 빈자리를 시장 중심의 책임경영이 채우며 금융산업 성장 기반이 형성됐다. 동시에 권한 집중과 견제 장치 사이의 균형이라는 새로운 과제도 남겼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찬진 금감원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주주권 확대…경영 개입 논쟁 재점화

최근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확대가 관치금융 논쟁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을 바탕으로 금융지주를 포함한 주요 상장사의 지배구조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25년 12월 19일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권을 향해 “가만히 두면 부패한 이너서클이 형성돼 소수가 지배권을 행사한다”며, 장기 재임 구조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국민연금이 추천한 인물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내부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는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제한해온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국회에서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관련 법 개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대표이사 선임 시 주주총회 의결을 의무화하고,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추천한 인사를 임원추천위원회에 포함시키는 방안 등이 핵심이다. 이는 주주권 강화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대주주로서 책임 있는 역할 수행과 경영진 견제 기능 강화가 가능해지며, 글로벌 투자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민연금이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정책 당국의 우회적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직접 규제나 인사 개입이 아닌 주주권을 통한 간접 영향력 행사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연금을 통한 주주권 강화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과 관치금융 확대 가능성이라는 우려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금융산업의 공공성과 시장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둘러싼 논의는 한층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지원 기자 / easy910@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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