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법 리스크’ 재점화하나…법원 “삼바 ‘회계 처리 기준 위반’”

시간 입력 2024-08-20 17:30:00 시간 수정 2024-08-20 17: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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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삼바의 증선위 상대 행정소송서 원고 승소 판결
삼성에피스 지배력 상실 처리 관련해선 ‘회계부정’ 판단
이재용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재판부 판결과 엇갈려
‘AI 칩 패권 확보 시급’ 삼성, 항소심서 법정 공방 불가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예기치 못한 암초와 맞닥뜨리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행정법원이 지난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부당합병·회계부정’과 관련한 소송에서 이 회장에 모두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과 엇갈리는 것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형사소송과 행정소송 재판부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놓으면서 현재 진행 중인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소송 항소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번 항소심에서 법정 공방이 한층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제기되는 가운데 재점화한 사법 리스크로 인해 ‘뉴 삼성’을 일구려는 이 회장은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삼바가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삼바의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지배력 상실 처리과 관련해 ‘회계 처리 기준 위반’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삼바는 자본 잠식 등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별다른 합리적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단독 지배에서 공동 지배로 변경됐다’고 주장했다”며 “이에 시점을 2015년 12월 31일로 보고 삼성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처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회계 처리 기준을 위반해 삼성에피스 투자 주식을 공정 가치로 부당하게 평가함으로써 관련 자산 및 자기자본을 과대 계상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삼바는 “2015년 삼성에피스 주요 제품의 국내 판매 승인 및 유럽 예비 승인 등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사업의 성과가 나타난 것을 계기로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이 실질적 권리가 됐다”며 “삼바가 삼성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삼성에피스의 합작사인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삼바가 삼성에피스를 단독 지배하는 것이 아닌 바이오젠과 공동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2월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선고 공판에 출석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박대한 기자>

그러나 재판부는 지배력 상실 처리라는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거꾸로 원인을 만들었다며 삼바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삼바의 콜옵션을 부채로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자본 잠식을 회피하기 위해 삼바가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바는 당초 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을 지배력 상실의 주된 사유로 고려하고 있었지만, 나스닥 상장이 무산되자 2015년 말에 있던 ‘삼성에피스 주요 약품에 대한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 긍정 의견’ 등을 대안으로 주장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성과가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의 합당한 이유가 된다는 삼바의 주장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국내 판매 승인 등은 삼성에피스 설립 시부터 이미 계획된 것으로 2012~2015년 삼성에피스 사업 계획에 따라 일관되게 진행돼 오던 것이고, 바이오시밀러 사업의 특성상 제품 개발의 실패 위험이 높지 않기 때문에 중대 이벤트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허가기관으로부터 확인을 받아 임상 시험에 착수했다는 것은 허가기관이 요구하는 오리지널 신약과 품질 동등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다”며 “임상에 진입한 경우라면 성공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고, 판매 승인까지 무난히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법원은 삼사가 지배력 상실 시기로 2015년 12월 31일을 정해 놓고, 이를 위해 근거 자료를 임의로 만들어냈다고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삼바가 채권 평가기관 등에 2014년 12월 31일을 평가 기준일로 해 콜옵션에 대한 공정 가치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평가 공문을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평가 공문의 내용까지 스스로 작성했다”며 “게다가 해당 평가 공문의 작성일을 2014년 12월 31일로 소급해 기재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는 삼바가 2014년에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를 하지 않고, 2015년도에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를 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관련 근거 자료를 임의로 만들어내려고 한 것에 해당한다”고 꼬집었다.

행정법원이 이같은 판단을 내린 것을 두고 이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소송 판결 내용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해당 소송을 심리한 형사소송 재판부의 판결 내용이 행정소송 재판부의 판단과 크게 상이해서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삼바와 관련한 거짓 공시, 분식회계를 한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 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CHMP의 판매 승인 권고 등을 근거로 “콜옵션은 2015 회계연도부터 실질적인 권리에 해당했으므로 삼성에피스의 성과에 따라 기업 가치에 본질적 변화가 있었다”며 “삼바가 자본 잠식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배력 상실 회계 처리를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삼바의 지배력 상실 처리는 합당했고, 분식회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행정소송 재판부가 회계 처리 기준 위반이 있었다는 판단을 제시하면서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소송 항소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올 2월 검찰은 1심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당시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의한 그룹 지배권 승계 목적과 경위, 회계부정과 부정 거래 행위에 대한 증거 판단, 사실 인정 및 법리 판단에 관해 1심 판결과 견해 차가 크다”며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을 인정한 법원 판결과도 배치되는 점이 다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올 5월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을 마치는 등 법정 다툼 2차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행정소송 재판부의 이번 판단으로 인해 향후 삼성과 검찰, 금융당국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서 형사소송 1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은 삼바의 회계 처리 과정만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고, 지배력 변경 자체의 타당성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한 것인 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삼성전자 HBM3E 12H. <사진=삼성전자>

지난 2022년 10월 이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직에 오르며 ‘이재용호(號)’는 본격 출항했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히면서 혼선이 다시 재연되는 분위기다.

삼성은 최근 경영 상에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1위를 놓친 적 없던 삼성은 최근 AI(인공지능) 시대 속 급부상하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경쟁사에 내주면서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실제로 삼성은 글로벌 HBM 시장에서의 패착을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앞서 올 3월 20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는 ‘HBM 시장에서 삼성이 한발 밀린 것 아니냐’는 주주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역전을 허용했다”고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잘 준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HBM 패권을 빼앗기면서 ‘글로벌 톱 메모리 업체’로서의 위상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 메모리 시장에서 위기에 몰린 삼성은 HBM 경쟁력 제고에 사활을 건 상태다. 김경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품기획실 상무는 “D램을 8단으로 적층한 HBM3E 8단 제품은 올 4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며 “업계 내 고용량 제품에 대한 고객 니즈 증가에 발맞춰 업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제품도 조만간 양산할 예정으로, 램프업(생산량 확대) 또한 가속화할 계획이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같은 위기 상황에서 삼성 수장인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할 경우, 삼성의 반도체 경쟁력 회복이 지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당장 HBM 등 반도체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절실한데, 항소심 절차가 진행되면 이 회장이 의사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최악의 경우, 삼성 반도체가 글로벌 주도권 다툼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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