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리더십 회복, 한시가 급한데”…이재용, 사법리스크에 노조파업도 재개되나

시간 입력 2024-09-25 18:05:00 시간 수정 2024-09-25 18: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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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이재용·삼성물산 등 상대로 5억원대 손배소 제기
30일엔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관련 2심 공판도 열려
전삼노, 대표 교섭권 재확보 할 듯…삼성 내 파업 우려 재점화
“반도체 패권경쟁 속, 사법리스크·노조파업 악재 작용”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삼성전자>

글로벌 불확실성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잇따른 ‘사법 리스크’와 ‘노조 리스크’로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피해를 봤다며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오는 30일에는 ‘부당합병·회계부정’ 항소심 공판을 시작으로 법정 다툼이 본격화 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대표 교섭권 문제로 한동안 파업 등 쟁의 행위를 중단해 온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내달부터 노조 활동을 재개할 움직임 이어서, 반도체 패권회복 등 이재용 회장의 경영행보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5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달 13일 서울중앙지법에 이 회장과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5억원대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손해 배상 청구 대상은 삼성물산 법인 외에 이 회장,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 총 8명이다.

이번 손해 배상 청구액은 5억100만원이다. 다만 향후 소송 과정에서 전문가 감정 등을 통해 피해 금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함에 따라 청구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눈여겨볼 점은 국민연금이 손해 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10년)가 불과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결정된 2015년 7월 주주 총회(주총)를 기준으로 소멸 시효는 내년 7월까지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복지부 쪽에서 연내 시효가 완료되기 전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계속 이야기해 왔다”며 “소송 준비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한 2015년 9월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대주주였다. 양사는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이후 두달 뒤 열린 임시 주총에서 합병안이 가결됐고, 같은해 9월 1일 공식 합병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당시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국민연금의 예기치 않은 손배소로 인해 이 회장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사실상 일단락됐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논란이 수면 위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또한 이 회장은 이달 30일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한 2심 공판도 앞두고 있다. 앞서 2020년 9월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그룹 콘트롤타워인 미전실 주도로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 조종 등 각종 부정 거래가 이뤄졌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삼성물산의 주요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삼성물산 이사들을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을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했다.

이 회장 등 피고인들은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에 대한 분식회계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삼바가 지난 2015년 합병 이후 회계 처리 과정에서 자산 4조5000억원 상당을 과다 계상했다고 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올 2월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을 비롯해 모든 피고인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바와 관련한 거짓 공시, 분식회계를 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 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에 검찰은 항소했다. 검찰은 지난 5월 열린 항소심 공판준비기일에서 삼성의 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을 인정한 앞선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1심이 배치되는 판단을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항소심 공판을 시작으로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본격화 하는 가운데, 국민연금과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추가되면서 이 회장은 사법 리스크는 더 가중되는 분위기다.

사법 리스크 뿐만 아니라 노조 리스크도 다시 재개될 조짐이다.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대규모 파업을 진행했던 전삼노가 대표 교섭권을 다시 쥘 것으로 관측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쟁의 행위가 재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 노사 간 교섭이 수차례 난항을 겪으면서 전삼노는 지난 5월 29일 삼성전자 최초의 파업을 선언했다. 이후 생산 차질에 기반을 둔 ‘무임금·무노동 파업’ 등 여러 차례 쟁의 행위를 벌이며 사측을 압박했다.

이후 열린 사측과의 ‘끝장 교섭’에서 일부 진전이 있는 듯했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전삼노는 게릴라 파업과 준법 투쟁으로 전환해 장기적인 투쟁을 이어 나가겠다고 엄포를 놨다.

5월 29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기자회견. <사진=오창영 기자>

결국 전삼노는 올 8월 초 사측과 단체 협약 체결에 실패하면서 대표 교섭권 및 파업권을 상실했다. 이에 전삼노는 최근까지 대표 교섭권 재확보를 위한 절차를 최우선으로 진행해 왔다.

현재 삼성전자 내 5개 노조 모두 교섭 요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내에는 전삼노를 비롯해 사무직노동조합(1노조), 구미네트워크(2노조), 동행노동조합(3노조), 삼성그룹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옛 DX노조, 5노조) 등의 노조가 있다.

교섭 창구 단일화에 참여한 노조 전체 조합원 수의 과반을 넘기는 노조는 전삼노 뿐이다. 삼성전자 교섭 요구 노조 확정 공고문에 따르면 이번에 교섭을 요구한 조합원은 총 4만3625명이다. 이 중 전삼노 조합원은 3만6616명에 달한다.

아울러 전삼노는 우호적 관계인 1노조와 단일화를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노조들에게도 “대표 교섭은 전삼노가 진행하겠다”는 뜻을 전달하는 등 연대에 나섰다. 업계 안팎에서는 대표 교섭권과 파업권을 전삼노가 다시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전삼노는 하루 뒤인 26일 사측에 과반수 노조 통지를 한다는 방침이다. 타 노조에서 이의 신청이 없을 경우 전삼노는 수일 내 교섭 대표 노조로 확정된다.

절차상 별 문제가 없을 시 전삼노는 당장 다음달부터 사측과 교섭을 재개하게 된다. 파업권을 가진 전삼노가 사실상 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게 되는 만큼, 그동안 소강 상태를 보이던 파업 리스크도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삼성그룹 사기.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직에 오르며 이재용 호(號)가 본격 출항 했지만,  이처럼 사법 리스크와 노조 리스크가 이어지면서 혼선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삼성은 최근 주력인 반도체 부문에서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 1위를 놓친 적 없던 삼성은 최근 AI 시대 속 급부상하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경쟁사에 내주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실제로 삼성은 글로벌 HBM 시장에서의 패착을 스스로 시인한 바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역전을 허용했다”고 공식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잘 준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위기 상황에서 사법·노조 리스크가 본격화할 경우, 삼성의 핵심사업인 반도체 경쟁력 회복이 지체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은 HBM 등 반도체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절실한데, 각종 법정 다툼에 파업 위기까지 촉발될 경우, 이 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행보를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장, 글로벌 패권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삼성의 반도체 경쟁력 회복 이 지체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고 지적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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