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삼성 준법위원장 “이재용 회장, 등기 임원 재선임 바람직”
이재용,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한 미등기 임원…책임 경영 차질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힌 이재용 대신할 컨트롤타워 재건 필요성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가 삼성그룹의 책임 경영 실천을 위해 지배구조 혁신이 필요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부당합병·회계부정’ 항소심 절차가 시작되며, 다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등기 이사 복귀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준법위는 또한 삼성의 경쟁력 회복을 주도할 핵심 기구 설치 가능성도 요구했다. 과거 미래전략실(미전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가동을 통해 위기 관리는 물론 그룹의 미래 전략을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위원장은 18일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린 3기 준법위 정례 회의에 앞서 취재진들과 만나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회장이 등기 이사로 복귀해서) 책임 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책임 있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등기 이사 재선임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짚은 것이다.
현재 이 회장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한 미등기 임원이다. 이 회장은 과거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등기 이사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미등기 임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책임 경영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있다.
여기에 검찰의 항소로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 하면서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 구체화에도 제동이 걸린 상태다.
실제로 이 회장은 4년째 법정 다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이 처음 시작된 이후부터 올해 2월 최종 선고까지 약 3년 5개월 동안 무려 107차례의 심리가 열렸다. 이 중 이 회장은 총 96차례 직접 출석했다.
해당 기간 동안 이 회장은 그룹 경영에 큰 부담을 겪어 왔다. 사실상 모든 재판에 출석하는 바람에 반도체 경쟁력 제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지속 투자 등 굵직한 현안을 챙기는데 어려움이 컸고, 또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불가능 했다.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재도약 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 실현도 상당 기간 동안 차질이 불가피했다. 그 사이 ‘메모리 최강자’였던 삼성전자는 AI 시대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패권을 경쟁사에 내줬고, 스마트폰 등 일부 주력 사업에서도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과거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M&A(인수합병)를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 계획도 최근에는 사실상 중단된 실정이다.
지난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는 듯했던 이 회장은 검찰이 항소하면서 다시 길고 긴 법정 다툼을 다시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위기 타개가 절실한 상황에서, 사법 리스크까지 다시 닥치면서, 결국 준법위는 15일 공개한 ‘삼성 준법위 2023년 연간 보고서’에서 이 회장의 등기 이사 복귀를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연간 보고서 발간사를 통해 “삼성은 현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내 최대 기업이지만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 상황의 변화, 경험하지 못한 노조의 등장, 구성원의 자부심과 자신감 약화, 인재 영입 어려움과 기술 유출 등 사면초가의 어려움 속에 놓여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외형적인 일등을 넘어 존경받는 일류 기업으로 변화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며 “경영도 생존과 성장을 위해 과감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과거 삼성의 어떠한 선언이라도 시대에 맞지 않다면 과감하게 폐기하고, 사법 리스크의 두려움에서도 자신 있게 벗어나야 한다”며 “구성원들에게 ‘우리는 삼성인’이라는 자부심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시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삼성은 최고 경영진의 등기 임원 복귀 등 책임 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와 함게 삼성 내에 ‘제2의 미전실’이 재건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 회장은 내년 초 항소심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사법 리스크에 대응해야 한다. 이에 삼성그룹의 수장으로서 경영 행보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이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의 의사결정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복원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삼성은 2017년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을 폐지하고, 사업 부문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각 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조직의 부재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삼성 내부에서 발현된 위기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당장 올 3분기 삼성전자는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9조원대의 영업이익에 그쳤다. 특히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인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영업익은 5조원대에 머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제기됐다.
주목할 점은, 경쟁자인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이익이 7조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반도체가 수성해 온 ‘메모리 최강자’ 자리도 SK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와 같은 TF 체제가 삼성의 실적 부진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의 모든 부서가 제각기 따로 분리돼 유기적인 협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과거처럼 일사분란함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의 주력 사업이 차질을 빚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도 삼성이 통일성 있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부활을 논하고 나섰다.
국내 굴지의 여타 그룹들은 대부분 컨트롤타워를 통해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LG의 경우 지주사인 LG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통해 그룹의 의사결정 사안을 계열사에 안정적으로 전달한다. SK도 SK수펙스추구협의회(SK수펙스)를 통해 계열사들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이 회장 앞에는 반도체 주도권 탈환, 미래 먹거리 발굴 시급 등 여러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현재의 TF 체제로는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미전실에 준하는 그룹 내 컨트롤타워를 부활시켜 이 회장이 그룹을 효율적으로 총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준법위 역시 대내외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삼성그룹에 컨트롤타워를 재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3기 준법위에서 컨트롤타워 재건이 마무리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위원장은 “어떤 사안에 있어서 준법위가 정말로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그룹 내외부에서 의견이 분분하다”며 “준법위 내부에서도 생각이 다르고, 삼성 안에서도 여러 다양한 생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도 내보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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