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0억 상생안보다 ‘시장 독과점 해소’ 우선… 공정위, 배민·쿠팡 신청 기각
연내 전원회의서 수천억 과징금 심의…과징금·플랫폼 규제 기준 재편되나

김범석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우아한테크콘퍼런스2025’ 기조연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진채연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배달의민족(배민)과 쿠팡이츠의 동의의결 신청을 전면 기각함에 따라, 총 3600억원 규모의 상생 지원안이 무산됐다. 공정위는 경쟁질서 훼손의 중대성을 이유로 ‘신속한 위법성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수천억원대의 과징금 부과와 함께 배달 플랫폼 구조개편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공정위는 18일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과 쿠팡(쿠팡이츠)가 각각 신청한 동의의결 절차 개시를 모두 기각했다고 밝혔다. 동의의결은 사업자가 자진 시정안과 피해 구제 방안을 제시할 경우,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번 사안이 해당 제도의 적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양사는 그동안 입점업체에 ‘최혜대우’를 요구한 혐의 등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의혹으로 조사를 받아왔다. 배민은 여기에 더해 자사 배달 서비스 우대, 배달예상시간 부당 광고 혐의까지 포함해 총 3건에 대해 동의의결을 신청했고, 쿠팡은 최혜대우 요구 건에 대해서만 신청했다. 다만, 쿠팡은 와우멤버십과 쿠팡이츠를 연계한 ‘끼워팔기’ 혐의는 이번 신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양사가 제시한 상생안 규모는 총 3600억원에 달한다. 배민은 3년간 3000억원을 투입해 최혜대우 요구를 폐지하고 수수료 및 배달비 지원(610억원), 상생협력기금 조성 등을 제안했다. 쿠팡도 4년간 600억원 규모의 입점업체 지원과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관련 업체의 이같은 방안이 경쟁질서를 회복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특히 △다수 입점업체와 소비자에 미친 영향 △시장 경쟁 제한 효과의 중대성 △기존 프로모션과 중복되는 지원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질서 회복 가능성이 핵심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구조 변화도 주요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배달앱 시장은 과거 다수 사업자 경쟁 구도에서 최근 배민과 쿠팡이츠 중심의 과점 체제로 재편됐다. 실제 주문금액 기준 점유율은 배민이 약 50%, 쿠팡이츠가 30% 수준으로 두 업체의 합산 점유율이 80%를 웃도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정위는 이 같은 시장 집중도가 위법 행위와 무관치 않다고 봤다.
이에 따라, 이번 건은 동의의결 절차 없이 본안 심의로 직행하게 됐다. 공정위는 연내 전원회의를 통해 위법 여부와 제재 수위를 확정할 계획이다. 심사보고서 기준 예상 과징금은 배민이 2390억~5100억원, 쿠팡이 250억~420억원 수준이며, 쿠팡의 끼워팔기 혐의까지 포함될 경우 수천억원대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우아한형제들은 입장문을 통해 “시장 경쟁질서 회복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동의의결이 무산돼 아쉽다”며 “3000억원 규모의 상생안은 역대 최대 수준이며 수수료·배달비 등 직접 지원이 포함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쿠팡 역시 “향후 심의 절차에서 입장을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양사 상생안 내용. <표=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공정위의 결정에 소상공인 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외식업중앙회,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등 5개 단체는 “소상공인들에게 있어 수년 뒤 과징금보다 실질적인 비용 절감과 부담완화가 더 시급하다”며 재심의를 촉구했다. 이들은 동의의결 기각으로 수수료 인하 및 지원책이 무산될 경우, 당장 일선 현장에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사건 처리 방식을 넘어 배달 플랫폼 규제 방향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공정위가 ‘신속한 피해 구제’보다 ‘명확한 위법성 판단’을 선택지로 삼으면서, 향후 플랫폼 규제에서 동의의결 활용 범위가 제한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지배력 남용과 같은 구조적 경쟁 제한 사안에서, 1차적인 금전적 보상보다 행위 규제와 법적 판단을 우선하는 기조가 확인됐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배달 플랫폼 뿐만 아니라 국내 여타 플랫폼 정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과징금 수위 뿐만 아니라 자사우대, 멤버십 결합, 수수료 구조 등 핵심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 강화 기조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쿠팡의 경우, 멤버십-이츠 결합 구조가 문제될 경우, 사업 구조 조정 압박까지 받을 수 있고, 배민 역시 ‘배민배달’ 중심 수익 모델에 대한 규제 리스크가 부각될 수 있다.
또 다른 변수는 기업 가치다. 특히 딜리버리히어로(배민 모회사)의 배민 매각 추진과 맞물려 규제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기업가치 할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플랫폼 사업자들이 향후 규제 대응 전략으로 동의의결 대신 법적 다툼을 선택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관측이다.
정희은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본안이) 조속히 심의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구체적으로 몇 달 안에 전원회의를 연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올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진채연 기자 / cyeon1019@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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