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임시 이사회서 일반 공모 유상 증자 결정 전격 철회
“고려아연, 돈 빌려 놓고 주주에게 빚 갚게 하나” 논란
금감원, 증권 신고서 정정 요구…유상 증자 차질 불가피
최윤범, 기자회견서 고개 숙여 사과…“의장직 내려놓겠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올 연말 임시 주총서 판가름 날 듯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이 지난달 30일 제출한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 공모 유상 증자 결정을 전격 철회했다. 지난 6일 금융감독원(금감원)이 고려아연의 유상 증자 결정을 두고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며 증권 신고서를 정정하라고 제동을 건 지 일주일 만이다.
그간 유상 증자와 관련해 논란이 들불처럼 번지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 놓겠다며 초강수를 두고, 사태 진화에 나섰다.
고려아연은 13일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최근까지 추진해 온 일반 공모 유상 증자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임시 이사회 이후 “지난달 30일 일반 공모 유상 증자를 결의할 당시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주주와 시장의 우려 등을 지속적으로 경청해 왔다”며 “주주 보호와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해 일반 공모 유상 증자를 관련 법규와 정관 등이 정한 절차에 따라 철회하기로 결의했다”고 유상증자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고려아연은 자사주 소각 후 발행 주식 전체의 20%에 육박하는 보통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 공모 형태로 신규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고려아연은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 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 중 채무 상환에만 2조3000억원을 쏟아 붓고, 시설 자금에 1350억원, 타법인 취득 자금에 658억원을 각각 사용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유상 증자를 통해 모은 자금은 이차전지 등 국가 전략 산업 육성을 위해 투자하고, 일부는 채무 상환에도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유상 증자가 성공한다면 최 회장측은 우호 지분 3~4%가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유상 증자 결정을 두고 시장에서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 속에서도 주주 가치를 제고하겠다며 주당 89만원에 자기 주식을 공개 매수하고선 이와 반대되는 성격의 유상 증자를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이 석연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고려아연이 영풍·MBK파트너스에 대항한 자기 주식 공개 매수를 종료한 시점은 지난달 23일이다. 이후 일주일 만에 일반 공모 유상 증자 결정을 발표한 것이다.
결국 영풍·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고려아연이 돈을 빌리고 그 비용을 주주들에게 전가하게 한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금융당국도 칼을 빼들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 매수가 끝나기 전에 유상 증자를 계획했고, 이를 공시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일면서 파장이 확대된 것이다. 현재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 매수와 동시에 대규모 유상 증자를 계획한 게 아닌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의 거센 반발에 이어 금융당국까지 조사에 돌입하면서 결국 고려아연은 유상 증자 결정을 철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자기 주식 취득 공개 매수가 끝난 뒤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주가가 급등하는 등 시장의 예측을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불안정성이 극도로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같은달 30일 일반 공모 유상 증자를 결의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 공모 유상 증자를 공시한 이후 시장 상황 변화에 대해 기관 투자자와 소액 주주 등의 우려가 있었고, 금감원으로부터의 증권 신고서 정정 요구 등이 있었다”며 “당초 일반 공모 유상 증자를 추진할 당시에는 충분히 예측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일반 공모 유상 증자 결정을 철회하긴 했으나 그간 시장으로부터 날선 비판을 받아 온 고려아연은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사임하기로 한 것이다.
최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서 열린 일반 공모 유상 증자 결정 철회 관련 기자회견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소액 주주 보호와 참여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주주와 시장의 목소리에 더욱 더 귀를 기울이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에 이어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함으로써 이사회의 독립성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며 “해외 주주 및 투자자와의 소통 강화 차원에서 외국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일반 공모 유상 증자 철회도 공식화하면서 시장에도 사과했다.
최 회장은 “일반 공모 유상 증자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시장 혼란과 주주, 투자자 우려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사과드린다”며 “일반 투자자 중심의 다양하고 독립적 주주 기반을 강화하고자 도모했던 일이었으나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사전에 기존 주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고 거듭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용으로 내세운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 증자 계획이 무산되면서 영풍·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은 올 연말 임시 주주 총회(주총)에서 판가름 나게 됐다.
현재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공개 매수 종료 후 장내 매수를 통해 지분 1.36%를 추가로 취득했다. 이에 최 회장측과의 지분 격차는 5%p 넘게 벌어졌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영풍·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39.83%다. 최 회장과 우호 지분은 약 34.65%로 추산된다.
현 상황에서 임시 주총이 열린다면 최 회장측은 표 대결에서 패배할 공산이 크다. 사실상 경영권을 방어하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최 회장측은 고려아연 지분 7.5%를 소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 설득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측 우호 지분이 이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다가오는 임시 주총에서 캐스팅보트가 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약탈적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적자 제련 기업 영풍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은 국가 기간 산업으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해야 하고, 장기적인 관점과 안목, 성장성을 지키며 우리나라 경제의 주춧돌로서 기여해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하실 것이다”며 “회사의 장기적 성장과 발전을 믿고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무엇이 옳은 길인지 합리적으로 선택해 오신 주주들과 함께 다가올 임시 주총에서 승리해 고려아연을 지켜 내겠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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