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만 60km 주행, 밟으면 462마력 폭발
실연비 13.4km/L…공인 복합연비 웃돌아
도심선 조용한 전기차, 와인딩선 고성능 SUV
배터리를 가득 채우고 도심을 빠져나오는 동안 엔진은 줄곧 잠들어 있었다. 출발과 가속을 전기모터가 도맡아 실내는 고요했고, 계기판에 표시된 연료 게이지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런데 도심 외곽의 와인딩 로드에 들어서자, 볼보 신형 XC60 T8은 정적을 깨고 노면을 움켜쥐며 튀어 나갔다. 운전대를 잡는 내내 조용한 전기차와 고성능 SUV 사이를 수시로 오갔다. 이 매끄러운 전환 앞에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를 향한 오랜 의구심은 무색해졌다.
볼보의 신형 XC60은 2세대 XC60의 두 번째 부분변경 모델로, 시승차는 국내 라인업 중 최상위인 T8 AWD 울트라 브라이트 트림이다. 판매 가격은 9120만원이다. 서울 도심 정체 구간, 정속 주행이 가능한 고속도로, 그리고 경기 남부와 충청 북부의 굽잇길이 뒤섞인 왕복 400km를 사흘에 걸쳐 달렸다.
부분변경의 폭은 크지 않지만, 앞모습의 인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사선 메시 패턴을 새로 넣은 프론트 그릴은 이전보다 현대적이고, 다이아몬드 컷팅을 적용한 20인치 휠은 광택 알루미늄과 무광 포인트가 교차하며 정적인 차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오로라 실버를 두른 시승차는 그릴과 차체 하단의 마감이 바디 컬러와 어우러져 전면이 하나의 톤으로 정돈돼 담백하다.
측면과 후면은 이전 모델의 실루엣을 그대로 이어간다. 세로형 테일램프와 낮게 눌러 앉힌 루프라인은 여전히 XC60을 XC60답게 만드는 요소다. 화려함으로 시선을 끌기보다는 덜어냄으로 존재감을 남기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특유의 절제가 돋보인다.
문을 열면 볼보가 즐겨 쓰는 ‘스칸디나비아 거실을 통째로 옮겨왔다’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수평으로 뻗은 대시보드에는 순백색 리얼 우드인 화이트 드리프트 우드가 얹혀 블론드 컬러의 나파 가죽 시트와 조화를 이룬다. 밝은 우드와 밝은 가죽의 조합은 실내를 한층 넓고 환하게 보이게 해 동급 독일차들과는 결이 다른 온기를 만든다. 다만 밝은 톤의 특성상 이염과 오염 관리에 손이 더 가는 구성이기도 하다.
기능적 변화의 핵심은 11.2인치 독립형 센터 디스플레이다. 눈부심을 줄이는 LCF(Light Control Film) 반사 방지 코팅을 입혔고, 퀄컴의 차세대 스냅드래곤 콕핏 플랫폼을 얹어 응답성이 이전 세대의 두 배 수준으로 빨라졌다. 실제로 지도를 확대하거나 앱을 전환할 때 손끝으로 느껴지는 지연이 거의 없었다. 티맵 오토 내비게이션과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가 기본 탑재돼 정차 중에는 OTT와 다양한 웹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1410W 바워스앤윌킨스(B&W) 사운드 시스템은 이 가격대에서 기대할 만한 음질을 충실히 구현한다.
공간 활용성은 XC60의 오랜 강점이다. 2열은 성인 남성이 앉아도 무릎과 머리 공간에 여유가 있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위치를 손이 잘 닿는 곳으로 옮기고, 2+1 컵홀더를 더한 세심함도 실사용에서 체감됐다. 트렁크는 버튼 하나로 차체 뒤쪽 높낮이를 낮춰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기 편하게 했다.
신형 XC60 T8의 심장은 최고 출력 317마력의 2.0L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 18.8kWh 배터리의 조합이다. 시스템 합산 출력은 462마력에 이른다. 숫자만 보면 ‘친환경’보다는 ‘고성능’에 가깝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순수 전기 모드인 ‘퓨어(Pure) 모드’ 주행이었다. 완충 상태에서 도심을 달리자, 계기판의 전기 주행거리가 실제 달린 거리에 비해 더디게 줄었다. 환경부가 인증한 전기 주행거리는 57km인데, 정체가 잦은 도심 구간에서 회생제동을 적극 활용하니 실제로 60km 넘게 전기만으로 주행할 수 있었다. 제원상 수치가 실주행에서 무너지는 일이 흔한 것을 감안하면 인증치를 웃도는 실주행 거리는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다. 출퇴근길이 60km 안팎이라면 적어도 평일에는 주유소 갈 일이 없다는 얘기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성격이 완전히 바뀐다. 전기모터의 빠른 응답성이 엔진 출력과 겹치며, 공차중량 2톤이 넘는 덩치가 무색할 만큼 경쾌하게 튀어 나간다. 와인딩 구간에서는 에어 서스펜션이 포함된 액티브 섀시가 진가를 보였다. 차량과 도로, 운전자를 1초당 500회 감지해 감쇠력을 조율하는 이 시스템은 고속에서 차체를 낮춰 안정감을 키우고, 굽잇길에서는 롤을 억눌러 날카롭게 코너를 파고든다. 상시 사륜구동(AWD)이 출력을 고르게 분배해 젖은 노면을 달릴 때도 불안하지 않았다.
승차감의 완성도는 정숙성에서 드러난다. 노면 소음과 풍절음의 차단이 뛰어나 고속 주행 시 실내는 조용했고,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의 충격도 에어 서스펜션이 부드럽게 걸러냈다. 경제성은 이 차의 또 다른 강점이다. 시승을 끝낸 뒤 기록한 실연비는 13.4km/L였다. 공인 복합연비(11.7km/L)를 웃도는 수치다. PHEV 특성상 전기 모드 주행 비중이 높을수록 연비가 좋아지는데, 도심에서 전기 주행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실연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도 하나 있었다. 통풍시트를 켜자, 소음이 예상보다 크게 들려왔다. 정숙성을 상품성의 핵심으로 내세운 차인 만큼 전기 모드로 주행해 실내가 조용할수록 이 소음은 더 크게 들렸다. 더운 여름철 사용 빈도가 높은 기능이라, 팬 소음 개선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신형 XC60 T8은 PHEV를 향한 오래된 편견을 실주행으로 반박하는 모델이다. 평일에는 전기차처럼 조용하고 경제적이며, 필요할 때는 462마력의 힘으로 즉각 응답한다. 통풍시트 소음이라는 흠을 빼면 경쾌한 주행 성능과 경제성, 수준급의 편의성이 9120만원이라는 가격표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제원상 가장 긴 전기 주행거리를 원한다면 다른 선택지가 있겠으나, 하루에 두 얼굴을 매끄럽게 오가는 완성도로 따지면 XC60 T8은 프리미엄 PHEV SUV 시장의 기준점 가운데 하나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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