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3대 복합 위기] ① ‘메모리 최강자’ 내준 삼성…“차세대 메모리 HBM4·CXL는 선점한다”

시간 입력 2024-11-18 07:00:00 시간 수정 2024-11-18 09:14:51
  • 페이스북
  • 트위치
  • 카카오
  • 링크복사

글로벌 HBM 패권 다툼서 밀린 삼성, ‘메모리 2등’ 추락
세계 최초 HBM3E 12단 개발 불구 SK에 고객사 내줘
‘심기일전’ 삼성, 기술 초격차 통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
내년 하반기 HBM4 양산…CXL 기반 첨단 메모리도 개발

삼성전자가 불명예스럽게 ‘4만전자 시대’를 맞게 됐다. AI 메모리 경쟁에서 밀리면서 반도체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이 4조원대를 밑돌고.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주가가 큰 악재와 맞닥뜨렸다. 또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서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CEO스코어데일리는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복합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당면한 리스크를 타개할 돌파구는 무엇인지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14일 국내 주식시장이 역대급 충격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대한민국 대표주자인 삼성전자가 5만원선을 방어하지 못하고 끝내 ‘4만전자’로 추락한 것이다. 삼성이 ‘4만전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그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해 온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이 어느 순간 약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삼성전자는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서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을 경쟁사에 내주고 말았다.

위기를 느낀 삼성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기술 초격차 전략을 낙점했다. 삼성전자는 우선 차세대 HBM을 개발해 단숨에 경쟁사를 추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기반 첨단 메모리 개발에도 속도를 내, AI 시대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을 탈환 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9조183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2조4335억원 대비 277% 증가한 수치다.

1년 전과 비교해선 영업익이 크게 늘었으나 직전 분기보다는 오히려 감소했다. 올 2분기 삼성전자 영업익은 10조4439억원으로, 2022년 3분기(10조8520억원) 이후 7개 분기 만에 분기 영업익 10조원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1개 분기 만에 10조원선 밑으로 다시 추락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이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서 수익성을 제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메모리 사업은 서버와 HBM의 견조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일부 모바일 고객사의 재고 조정 및 중국 메모리 업체의 범용 D램 제품 공급 증가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며 “일회성 비용과 환 영향 등이 맞물리면서 실적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HBM3E’의 경우 예상보다 주요 고객사에 대한 사업화가 지연됐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AI 핵심 메모리로 손꼽히는 HBM 분야에서 스스로 부진하다고 인정하면서 반도체 사업 부진이 상당히 심각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AI 시대 핵심 메모리인 HBM 분야에서 실기하며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밀리는 분위기다. 삼성 반도체는 HBM 부문에서 큰 부침을 겪고 있다. AI 반도체 공룡인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미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고전하고 있다.

그간 삼성전자는 글로벌 HBM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SK하이닉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다.

HBM 최초 개발에 성공한 곳은 SK하이닉스였다. SK는 2013년 세계 최초로 TSV(실리콘관통전극)와 WLP(웨이퍼레벨패키지) 기술을 기반으로 1세대 HBM을 선보였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 2세대 HBM ‘HBM2’를 개발, 기술적 우위를 증명했다.

그러나 지난 2019년 SK하이닉스가 3세대 HBM ‘HBM2E’를 개발하며 ‘세계 최초’ 타이틀을 재탈환했고, 2021년에는 4세대 HBM ‘HBM3’, 지난해에는 업계 최고 성능의 5세대 HBM ‘HBM3E’를 연달아 개발하며 승승장구했다.

삼성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HBM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해 온 삼성은 지난 2월 24Gb D램 칩을 TSV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해 업계 최대 용량인 36GB HBM3E 12H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HBM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올 4분기 엔비디아의 HMB3E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판매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 부사장은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예상과 달리 그간 주요 고객사에 대한 HBM 사업화가 지연됐으나 고객사 품질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이 있어 올 4분기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사장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마침내 엔비디아에 삼성 HBM3E 공급이 임박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36GB HBM3E 12H. <사진=삼성전자>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삼성전자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밀월이 날로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서 자리를 꿰찬 상황이다.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한 SK는 9월에는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돌입하며 ‘HBM 1등 굳히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연내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삼성전자가 HBM3E 12단 제품을 먼저 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가 먼저 엔비디아에 HBM3E 12단을 납품한다는 소식은 삼성으로서는 뼈아팠다. AI 메모리 경쟁에서 밀려 최신 제품 양산에 돌입하지도 못하고, 품질 검증 마무리 여부도 확정 짓지 못한 삼성은 자존심을 구기게 됐다.

SK하이닉스에 HBM 패권을 내준 삼성 반도체의 실적은 큰 폭으로 곤두박질쳤다.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3조8600억원에 그쳤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을 앞세워 ‘분기 영업익 7조원 시대’를 열면서, 삼성을 따돌리고 메모리 최강자 자리를 차지했다.

사안이 심각성을 인지한 삼성 반도체 수장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장 부회장은 이례적으로 사과 메시지를 내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발했다.

전 부회장은 지난달 초 잠정 실적 발표 후 ‘고객과 투자자, 그리고 임직원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 메시지를 발표하고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모든 책임은 사업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 경영진에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전 부회장은 “저희가 치열하게 도전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반드시 새로운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삼성 경영진이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메모리 최강자 자리를 빼앗긴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준히 움직이고 있다. 오늘날 삼성그룹을 일구는 근간이 된 기술 초격차 전략을 통해 반도체 역량을 다시 제고하고 차세대 메모리를 선점한다는 포부다.

삼성전자는 AI 메모리 시장 공략의 첨병으로 차세대 HBM을 낙점했다. 6세대 HBM ‘HBM4’을 개발해 경쟁사를 단숨에 따라잡겠다는 구상이다.

김재준 부사장은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하반기 HBM4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복수 고객사와 커스텀(맞춤형) HBM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HBM4를 위한 전용 생산라인 ‘D1c’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10nm(1nm는 10억분의 1m) D램 공정은 D1x→D1y→D1z→D1a→D1b→D1c 순으로 회로 폭이 좁아진다. 이에 D1c는 10nm급 중에서도 극초미세 공정인 것을 알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대량 생산 전 소규모로 시범 제품을 만들어보는 ‘파일럿’ 생산 단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HBM4 생산을 위한 선단 공정 준비가 마무리되고 계획대로 내년 하반기에 양산이 시작된다면 삼성은 엔비디아에 HBM4을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따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엔비디아는 2026년 차세대 GPU(그래픽처리장치) ‘루빈(Rubin)’을 양산하겠다고 공언했다. 루빈에는 HBM4 8개가 탑재될 것으로 파악됐다.

머지않아 HBM4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누가 먼저 엔비디아에 HBM4를 납품할지 여부가 향후 AI 메모리 패권의 주인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만약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4 파트너가 된다면 현재의 반도체 부진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HBM 1등’ 탈환을 위해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지속해서 갖고 갈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로선 HBM4 샘플을 고객사에 가장 먼저 전달할 것 같다”고 예상한 바 있다.

10월 23~25일 사흘 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EDEX(반도체대전) 2024’에 마련된 삼성전자 전시 부스 내 코어 테크놀로지존. <사진=오창영 기자>

또한 삼성전자는 미래 핵심 기술인 CXL을 적용한 첨단 메모리 개발에도 사활을 걸었다. CXL은 ‘빠르게 연결해서 연산한다’는 의미로, CPU(중앙처리장치), GPU, 스토리지 등 다양한 장치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보다 빠른 연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차세대 인터페이스다.

이에 기반을 둔 D램이 바로 CMM-D(CXL메모리모듈-D램)다. CMM-D는 다양한 종류의 프로세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 대용량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해당 제품은 D램의 용량 및 성능 확장 한계를 개선할 수 있어 AI 시대, 차세대 솔루션으로 주목 받고 있다. 기존 D램과 공존하며 시스템 내 대역폭과 용량을 확장할 수 있는 CMM-D는 폭발적인 데이터 처리가 요구되는 HPC(고성능컴퓨팅) 시장에서 핵심 메모리로 부상할 전망이다.

그간 삼성전자는 CXL 기반 D램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 2021년 5월 업계 최초로 CMM-D 개발을 시작한 삼성은 업계 최고 용량의 512GB CMM-D 개발, 업계 최초의 CMM-D 2.0 개발 등에 잇따라 성공하며 글로벌 메모리 업계를 이끌었다.

올 2분기엔 CXL 2.0을 지원하는 256GB CMM-D를 출시하고, 주요 고객사들과 검증을 진행 중이다.

아울러 D램과 낸드플래시를 함께 사용하는 CMM-H(Hybrid), 메모리 풀링 솔루션 CMM-B(Box) 등 다양한 CXL 기반 솔루션 개발에도 적극 매진하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