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3대 복합 위기] ② ‘트럼프 리스크’에 지원금 ‘안개 속’…“텍사스를 삼성 편으로”

시간 입력 2024-11-19 17:40:00 시간 수정 2024-11-20 08: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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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미 텍사스주에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 투자
‘64억달러 지급’ 약속 받았지만 아직 보조금 못 받아
트럼프, 반도체 지원법에 ‘부정적’…지원금 공수표 위기
“TSMC처럼”…바이든 퇴임 전 보조금 확정 지어야
차세대 반도체 기술, ‘생존 기술’로 활용…동맹 유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불명예스럽게 ‘4만전자 시대’를 맞게 됐다. AI 메모리 경쟁에서 밀리면서 반도체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이 4조원대를 밑돌고.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주가가 큰 악재와 맞닥뜨렸다. 또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서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CEO스코어데일리는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복합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당면한 리스크를 타개할 돌파구는 무엇인지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트럼프 2.0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 귀환에 성공하면서 앞으로 트럼트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경제·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국내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반도체, 배터리 등 국내 주요 수출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투자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다.

당장, 시장에서는 AI(인공지능) 메모리 활황으로 부활하고 있는 K-반도체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지 우려하고 있다. 그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특히 미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삼성전자가 트럼프 리스크로 보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미국과의 협력 강화 등 실리 추구 전략을 통해 서둘러 보조금을 보장받고, 현지 주 정부와도 더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이달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 간 연구개발(R&D) 조직을 보유한 국내 기업 900개사를 대상으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산업계 긴급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의 77%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우리 경제와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 봤다. 반면,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의 영향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기업은 16%에 불과했다.

응답 기업 10곳 중 7곳은 이번 미 대선 결과가 글로벌 경제 환경을 크게 악화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이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인 반도체 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공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공장. <사진=삼성전자>

트럼프 리스크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당장 K-반도체는 미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지 못할까 노심초사 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만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 왔다. 그는 지난 7월 미국의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대만 등이 우리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며 “대만은 엄청나게 부유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만이 미국에 새 반도체공장을 짓도록 (미국은) 수십억달러를 주고 있다”며 “그들은 (미국에 지은 반도체공장을) 이후 다시 자국으로 가져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최근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도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며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AI 특수를 타고 회복 국면으로 접어든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국내 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지원법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다”며 “반도체 지원법 일부 수정 또는 축소 가능성이 있는 만큼 K-반도체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 전망이다”고 진단했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 역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산업별 영향’ 보고서를 통해 “자국 투자 유치를 위한 지원 정책과 대중 제재 변화 가능성 등 측면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시 국내 반도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보다 우세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한기평은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 비중을 높이거나 동맹국 업체에 대한 요구 사항을 크게 늘릴 수 있다”며 “이는 곧 K-반도체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K-반도체로서는 보조금을 지원 받지 못할 경우, 현지 반도체공장 건설에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에 힘입어 미 현지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 텍사스에 170억달러(약 23조6453억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건설 공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2030년까지 누적으로 약 450억달러(약 62조5905억원)를 투자해 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패키징 시설과 첨단 R&D 시설을 신축키로 했다.

삼성의 공격적인 대미 투자에 바이든 행정부도 화답했다. 미 상무부는 올 4월 삼성전자에 보조금 64억달러(약 8조9030억원)를 지급키로 결정했다. 당시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삼성전자의 미 텍사스주 첨단 반도체공장 투자를 위해 반도체 지원법에 의거, 64억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에 삼성전자는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국 반도체 기업보다도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 받게 됐다. 그러나 삼성은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아직 보조금을 지급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사이 TSMC는 미 정부로부터 보조금 66억달러(약 9조1806억원) 수령을 확정 지었다. 백악관은 이달 15일 성명을 내고 “미 상무부가 TSMC의 자회사인 TSMC 애리조나에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으로 최대 66억달러의 직접 자금을 수여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직접 자금 지원 외에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750억달러 규모 대출 권한의 일부인 최대 50억달러(약 6조9560억원) 규모의 저리 대출도 TSMC 애리조나에 제공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보조금 지원은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총 650억달러(약 90조4280억원) 이상을 들여 첨단 반도체공장 3곳을 짓는 TSMC의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주요 반도체 업체 중 TSMC에 최초로 보조금을 지급했다. 내년 1월 20일 예정된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두달여 앞둔 시점에 첫 수령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파운드리공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인스타그램 캡처>

당장 삼성전자도 바이든 대통령 퇴임 전 보조금을 확정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삼성은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기 위해 관련 논의 등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일 블룸버그 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반도체 보조금 예비 거래 각서(PMT)와 관련해 일부 주요한 세부 사항을 처리 중이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연말까지 가능한 많은 계약을 마무리해 삼성 등 반도체 업체에 자금이 유입되도록 하는 방안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보조금 수령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삼성이 한층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생존 기술’로 활용하는 등 실리 추구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미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이 마주하게 될 과학 기술 혁신 위기와 기회를 조망한 ‘과학 기술 정책 브리프’ 보고서에서 “K-반도체는 반도체 지원법에 의해 2025년 들어설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에 적극 참여해 미국 주도의 기술 개발 협력 체계에 편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선 STEPI 부연구위원은 “돌아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철저한 거래의 달인으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며 “미·중 경쟁의 심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리 추구에 기반을 둔 생존 기술 확보 전략이 최우선이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네트워킹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미 반도체 지원법 시행으로 혜택을 본 미 텍사스주 등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탄 공화당의 텃밭이다. 지역 일자리와 경제가 걸려 있는 만큼 해당 주의 공화당 의원들은 칩스법 폐지에 반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반도체 지원법은 트럼프 1기 때 공화당이 추진한 것을 바이든 정부에서 법제화한 것이어서 미 정계와의 네트워킹을 통해 충분히 보조금 지급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워싱턴 지부장은 "최근 수년 간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폭증으로, 미국 산업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됐다“며 ”특히 공화당 텃밭에 투자가 집중된 만큼 이들 지역의 공화당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제 지부장은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은 투자 지역 정부가 우리의 동맹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며 “실제로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게 그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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