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IFRS17에 보험 신뢰도 추락…정부 밸류업 정책에서 거꾸로
밸류업 위한 주주환원 군불 켜도 역부족…기대 못 미친 보험주
2025년 보험 업계 전망 ‘암울’…내년 금융당국 행보에 주목
연말연초 국내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저출생·초고령화 등으로 대한민국 성장 엔진이 점차 동력을 상실해 가던 와중에 ‘비상계엄’ 후폭풍에 이은 ‘탄핵 정국’과 맞물린 대혼돈 속에서 중심을 못잡고 있다. 이에 각 금융기업과 당국은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시장 점검과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행정·정책 공백에 따른 혼란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전문가들이 점치는 내년도 경제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골드만삭스는 계엄 사태 이후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우리 금융시장 체질이 충격완화 능력을 갖춘 만큼 통화 부양책을 통한 대응 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2024년 금융권의 이슈와 전개와 2025년 시장 전망과 과제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국내 보험 업계의 2024년을 달군 대표 키워드를 꼽는다면 단연 ‘IFRS17’일 것이다. 이는 올해로 시행 2년 차를 맞이한 새 보험회계 기준인데 최근 들어, 국내 보험 업계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IFRS17이 소위 ‘고무줄 회계’를 유발해 보험사들로 하여금 보험 업계 신뢰 하락을 야기했다는 게 골자다. 이는 정부가 국내 주식 시장의 평가절하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현재 주도하고 있는 기업가치 제고(이하 밸류업) 정책에도 역행하는 움직임이다. 설상가상 금융당국이 제대로 방향키를 잡지 못해 시장에 혼란까지 가중하면서 올해 국내 보험 업계는 밸류업이 아닌 밸류다운을 가리켰다.
내년 전망 역시 암울하다. 성장률 저하로 인한 소비·소득 감소는 물론 환율 변동성으로 인한 경기후퇴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보업업계 성장·수익·건전성 모두 악화일로를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는 이로 인한 보험 소비감소·투자 수익저하·상품 해지 증가라는 삼중고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IFRS17 자율성에 보험사·금융당국 ‘엇박자’…시장 불신 원흉
문제의 불씨는 IFRS17이 큰 틀만 정해주는 ‘원칙주의 회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했다. 각 보험사는 원칙주의 회계 기반에서 자체 계리 기준으로 회계 값을 산출할 수 있는데 기준이 낙관적일수록 현재 이익이 늘고 대신 미래 이익은 줄어드는 구조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험사가 IFRS17 시행 원년인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내자 보험회계 변경만으로 얻은 ‘껍데기 성과’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미래 이익을 현재로 최대한 끌어온 ‘조삼모사’ 결과물 아니냐는 의심까지 더해지며 국내 보험 업계 신뢰에 금이 갔다. 김용범 메리츠금융그룹 부회장도 작년 1분기 컨퍼런스콜을 통해 IFRS17 하에서의 자의적 계리 가정을 경계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처음 적용된 IFRS17에 따른 생명·손해보험사 2023년 1분기 당기순이익은 7조원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한 해 생·손보사 당기순이익인 9조1801억원의 76%에 달하는 수준이다. 매출은 대동소이한데 회계 기준 변경만으로 실적이 단기간 내 급성장하면서 실적이 부풀려졌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작년 상반기 생·손보사 당기순이익도 전년 상반기보다 70% 가까이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씨를 키운 건 금융당국이다.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데다가 발걸음마저 일관되지 않아서다. 우선은 10여 년 전부터 IFRS17 도입을 준비해 온 주체가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작년 5월 IFRS17 설명회를 통해 '2022년 말 기준 국내 보험 업계 부채가 IFRS4 시행 때보다 221조원 감소했다'고 밝히며 IFRS17 운영에 빈틈이 있음을 인정했다.
올해 5월 보험개혁회의를 출범하고 사태 수습에 본격적으로 나섰는데 이번에는 과도한 개입으로 업계 불만을 샀다. 원칙주의 회계가 본질인 IFRS17 운용에 오히려 많은 제약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주환원을 위한 배당 등 밸류업에도 제동이 걸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했다. 밸류업을 주문하고 동시에 밸류업을 저해하는 이상한 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생·손보사 실적이 상승세를 타고 있음에도 시장의 반응은 잠잠하다. 올해 9월 누적 기준 생·손보사 당기순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1조5624억원(13.2%) 증가한 13조3983억원을 기록하며 역대급 실적을 찍었지만 실적 수치 신뢰도가 이미 많이 떨어져서다. 게다가 금융당국 주도의 ‘IFRS17 계리 기준 새 가이드라인’이 올해 연말 결산부터 다시 적용될 예정이어서 변수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롯데손보 매각 불발이 대표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6월 롯데손보 지분 인수를 철회했다. 가치 대비 몸값이 높은 게 주된 이유로 알려졌는데 실제로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적정하다고 판단한 가격을 과다 지급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롯데손보는 작년 1분기에 전년 동기 105억600만원 대비 655.5% 폭증한 793억75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해 3분기에는 누적 당기순이익 기준 전년 동기보다 67.9% 감소한 844억원을 기록하며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금융당국이 최근에 새로 정립한 무·저해지 보험상품 해지율을 적용할 경우 롯데손보의 실적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보험사 경영 실적, 상장 보험사 킥스비율. <그래프=CEO스코어데일리>
◆밸류업 정책 핵심은 주주환원…“배당 자격 문턱만 높아져”
보험사들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밸류업을 위한 주주환원에 올해 군불을 지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밸류업의 핵심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인데, 이를 달성하는 방안 중 하나로 주주환원이 꼽힌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주요 45개 국가들 중 27~45위로 주주환원율이 낮다. 특히 2010년부터 2018년의 기간에는 40위 이하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국내 상장기업의 주가-장부가 비율은 평균 1.2로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69%에 불과하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미흡한 주주환원 수준, 저조한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차원에서 메리츠화재가 포함된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해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이후 올해 9월 말까지 133%의 총주주수익률(TSR)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 기준 포워드 주가수익비율(PER)은 7.5배이며 자사주 매입 소각 수익률은 13.3%를 찍었다. 메리츠금융은 내년까지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의 50% 이상을 주주환원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앞서 삼성생명은 지난 3월 열린 주총을 통해 주주배당 성향을 작년 34%보다 1.1%포인트 오른 35.1%로 정하고 6640억원을 배당했으며 삼성화재는 6802억원을 배당했다. 또 한화손해보험은 지난 3월에 열린 주총에서 5년 만에 366억원 규모의 주주배당을 결의했다. 이외에 한화생명은 1127억원을 배당했으며 동양생명은 624억원 규모를 배당을 실시했다. DB손보는 3182억원을 배당했으며 현대해상은 1618억원을 배당했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밸류업을 위한 주주환원에 열을 올렸지만 주가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7월 말 기준 10개 생·손보사의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52배로 코스피 평균 PBR인 0.97배보다 낮았다. PBR은 주식가치가 회사의 자산가치를 얼마나 반영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며 1보다 낮을 경우 주가가 장부가치보다 낮다는 것을 뜻한다.
PBR이 낮은 이유는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낮기 때문인데 통상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이익 대비 자본 규모가 큰 경우 ROE가 낮다. ROE를 높이려면 주주배당을 늘리거나 자사주를 소각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계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IFRS17을 지목했다. IFRS17이 시행됨에 따라, 보험 부채를 원가에서 시가로 전환해 평가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로 인해 IFRS17 시행 한 달 전 금융당국이 만든 ‘해약환급금 준비금’ 규모가 폭증하면서 보험사 주주환원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해약환급금 준비금은 보험사가 보험계약 해약 등에 대비해 쌓는 금액으로 보험사 자본 건전성 유지와 보험금 지급 능력 강화, 보험계약자 수급권 보호 등이 목적이다. 보험 부채 규모가 해약환급금 규모보다 작을 경우 그 차액만큼을 준비금으로 쌓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덩치가 급격히 커졌다. 2022년 23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32조2000억원으로 8조5000억원 증가한데 이어, 올해 6월 말 기준 38조5000억원으로 6조3000억원 더 늘었다. 그만큼 보험사 주주환원 재원이 급속히 쪼그라들었다는 논리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10월, 정부 밸류업 정책과 맞물려 보험사 주주환원 재원을 IFRS4 종전 수준으로 확대할 목적으로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고 밝혔다. 다만 자본 건전성이 충분한 보험사에 한한다고 조건을 걸었다. 조건에 들려면 올해 연말 기준으로 신지급여력(K-ICS, 이하 킥스)비율이 사실상 200%를 넘어야 가능한데, 11개 상장 보험사 중 킥스비율이 200%를 상회하는 곳은 올해 6월 말 기준(경과조치 전)으로 삼성생명, 삼성화재, DB손보 등 세 곳뿐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1월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보험개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년에도 밸류업 ‘험로’ 예상…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비합리적·자의적 회계 뿌리 뽑겠다”
이처럼 국내 보험 업계는 새 보험회계 기준, 금융당국과의 엇박자 속에 밸류업을 향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밸류다운에 가까운 화살표를 하루빨리 밸류업 쪽으로 틀어야 할 테지만 내년 전망이 녹록하지 않다. 내부의 적 말고도 대통령 탄핵 정국 수습을 비롯해 저성장·경기 하락·초고령화 진입 등 외부의 적과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생명보험 업계에서는 킥스비율의 위험 평가 변화 시 낙관적 가정을 적용한 보험사의 경우 자본 조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낙관적 가정을 적용한 보험사들의 무·저해지 보험상품 해지율 변경 등으로 인해 IFRS17 하에서 보험사 수익성을 가늠하는 CSM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보상 범위·한도 축소가 예상되며 보험계약 유인 축소, 신규 판매 감소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성장성 측면에서 규제 강화에 따른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 위축, 대체 보험상품의 부재, 판매 경쟁 심화 등으로 성장률이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금융당국의 새 계리 기준 가이드라인 적용에 따른 CSM 조정 리스크, 장기적 관점에서의 금리 인하에 따른 투자이익률 하락 등은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건전성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자본 부담이 확대하는 가운데 킥스비율 하락 우려가 부각되고 자본 조달 니즈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 손해보험 업계에서는 CSM 확보가 용이한 장기보험 중심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이다. 다만 금리 하락, 관련 제도 변화 등이 예상되면서 CSM 감소, 보험 손익 둔화가 우려된다. 이에 더해 생명보험 업계의 보장성보험 판매 강화 추세에 따라 법인보험대리점(GA) 시장에서의 손해보험 업계의 영향력이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보험 부채 현실화 등으로 건전성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도 예상된다.
성장성 측면에서 고령화 진행에 따른 노후 대비 등의 이유로 장기보험 중심의 성장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동차보험의 경우 보험료 동결 등으로 저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금리 하락 등으로 인한 CSM 성장률 둔화가 상각액 감소로 이어지며 보험 손익 증가세는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건전성 측면에서는 생명보험 업계와 마찬가지로 금리 하락 등 금융 환경 변화로 인해 킥스비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보험 업계의 내년 업황과 관련해 보험연구원도 하나금융연구소처럼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금융시장분석실장은 지난 10월 ‘2025년 보험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성장률, 금리, 환율, 규제를 분석의 주요 키워드로 꼽았다.
황인창 실장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경제성장률 둔화는 소득 증가 둔화, 계약유지 약화 등을 통해 보험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 하락은 성장성 측면에서 가계소득 증대에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보험료 상승 등을 통해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외 부채 할인율 하락, 금리위험 증가 등을 통해 건전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율 하락은 일반보험 수요 감소 등을 통해 성장성에 부정적일 수 있으며 수익성 측면에서 해외자산의 이자 손익 감소 등으로 안 좋게 나타날 수 있다”며 “금융당국 주도의 규제 강화는 계리·경제적 가정 등에 영향을 미쳐 성장성, 수익성에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킥스 도입 이후 제도 현실화 과정에서 지급여력비율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부연했다. 이어 “경영환경 전망에 따른 보험산업 영향을 종합해 보면 성장성 둔화, 수익성 약화, 건전성 악화가 예상된다”며 “금융당국의 규제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지금의 전망치보다 실제 수치는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월, ‘제4차 보험개혁회의’를 열고 보험 건전성 감독 강화 등 IFRS17 안착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계리적 가정 등이 전제되는 IFRS17이 고무줄식 회계가 아니라 보험사의 실질 가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며 “보험사의 비합리적·자의적 회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제4차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발표된 주요 계리 가정 가이드라인은 올해 연말 결산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손해율 가정은 결산 시스템 수정 등 물리적 한계가 있는 경우 내년 1분기까지 반영할 수 있다. 할인율 연착륙 방안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CEO스코어데일리 / 백종훈 기자 / jhbaek@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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