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전망] 야심차게 출범한 ‘밸류업’, 정국불안·기업 소극적 참여에 효과 미지수

시간 입력 2024-12-30 07:00:00 시간 수정 2024-12-27 17: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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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지수 9월말 대비 3%가량 하락…코스피 6% 하락보다는 선방
밸류업에도 증시 약세로 투심 계속 빠져나가…밸류업 ETF도 차별성 확보 어려워
기업 참여 독려할 세제혜택 관련법 개정도 탄핵정국 속 국회 문턱 못 넘어

연말연초 국내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저출생·초고령화 등으로 대한민국 성장 엔진이 점차 동력을 상실해 가던 와중에 ‘비상계엄’ 후폭풍에 이은 ‘탄핵 정국’과 맞물린 대혼돈 속에서 중심을 못잡고 있다. 이에 각 금융기업과 당국은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시장 점검과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행정·정책 공백에 따른 혼란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전문가들이 점치는 내년도 경제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골드만삭스는 계엄 사태 이후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우리 금융시장 체질이 충격완화 능력을 갖춘 만큼 통화 부양책을 통한 대응 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2024년 금융권의 이슈 전개와 2025년 시장 전망과 과제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5월 정부 주도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 도입된 지 반 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증시가 직접적인 반등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내년 증시에도 밸류업 프로그램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에 연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에 따른 ‘탄핵 정국’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며,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세법 개정 등이 막히면서 밸류업 프로그램의 동력 자체가 약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 주주환원 강화책을 공시한 상장사(예고공시 제외)는 지난 26일 기준 76개사에 불과하다.

지난 5월 정부에서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기업의 동참을 독려할 때만 해도 금융지주들과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밸류업 공시가 이뤄졌으나, 최근 들어 밸류업 동참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기업의 참여가 소극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이미 한 밸류업 정책을 철회하는 기업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고려아연, 진원생명과학 등은 유상증자 계획이 금감원 심사 과정에서 반려되면서 결국 철회하는 사례가 있었다.

◆밸류업 펀드‧ETF 등 시장 침체에 수익성 ‘마이너스’…반면 증권주는 ‘날개’

먼저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프로그램의 후속조치로 내놓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전반적인 국내 증시 침체와 맞물리며 뚜렷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26일 종가 기준 960.86포인트로 지난 9월 30일 첫 상장일 종가 992.13포인트 대비 31.27포인트(3.2%) 하락했다. 그나마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593.27포인트에서 2429.67포인트로 163.6포인트(6.3%) 떨어진 만큼 상대적으로는 선방했다.

현재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주로 구성하고 있는 금융주 등의 종목과 수익률이 연계되고 있는 현상도 일어난다.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금융주를 매도함에 따라 감소폭이 더 커졌다.

이처럼 밸류업 지수 도입 이후에도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함에 따라, 국내 투자자들도 국장을 떠나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30일 기준 56조8329억원이던 투자자예탁금은 이달 24일 기준 50조6265억원으로 도리어 감소했다.

밸류업 지수를 부양하기 위해 각 운용사들을 동원해 내놓은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 등 상품들도 기존 우량주 펀드와의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존재감이 미약하다. 코스콤에 따르면 현재 상장돼 있는 밸류업 테마 ETF 12종은 최근 한 달 수익률 기준 약 2~3%대를 보이고 있다. 3개월 기준으로는 마이너스다.

금융투자 상품과 별개로 밸류업 의지와 실적 개선으로 증권주는 올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대형 증권사들은 주주환원책에 호실적까지 더한 결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등 5대 증권사의 올해 3분기 누적 순이익은 3조7199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증권주는 지난 26일 종가 774.04를 기록해 연초 대비 17.5%나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8.5%나 빠진 것과 대조적이다. 5대 증권사만 놓고 보면 올해 들어 평균 25.8%나 상승했다. NH투자증권은 39.2%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키움증권도 31.8%나 올랐다. △삼성증권 26.0% △한국금융지주 22.5% △미래에셋증권 9.7% 등 모두 상승세를 그렸다.

내년에도 증권업계는 대형사를 중심으로 상승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부진한 반면 해외주식 거래는 늘고 있어 리테일에 강점이 있는 곳일수록 수익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기업금융(IB)에서도 주식발행시장(ECM), 채권발행시장(DCM) 등 전통 IB 분야는 물론 부동산금융에서도 대형사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내년에도 대형사와 중소형사간 희비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누적 수익을 보면 5대 증권사와 자기자본 1조원 이상 2조원 미만의 중형사 9곳의 수익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대형사는 수탁수수료와 채무보증 수수료가 각각 9.8%, 16.6%씩 증가한 반면 중형사는 수탁수수료는 3.1% 줄고 채무보증 수수료는 15.2%나 감소했다.

◆기업 기대 모았던 세제혜택, ‘탄핵정국’ 속 국회 문턱 못 넘어

밸류업에 동참하는 기업에 주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세제혜택 관련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당초 밸류업 동참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으로는 △주주환원 증가 금액의 5%를 법인세 세액 공제 △배당소득세 세율 인하 및 분리과세 △상속세 최고세율 40%로 인하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밸류업 기업 대상 가업상속공제 대상 확대 등이 도입될 예정이었으나, 최근 불거진 탄핵 정국으로 인해 국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통과 여부가 미지수로 남았다.

여기에 밸류업 프로그램에 일정한 강제성이 없으며, 우리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단순히 선언적인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점도 기업의 참여 요인이 부족하다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요 거버넌스 문제를 개선하는 법제의 보완 없이 경영진의 행동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있으며, 전반적으로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며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결합이 추진되면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상충하는 상황이 논란의 한가운데 있고, 이사회가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는지도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밸류업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 증권가 “밸류업 기대감 축소되거나 관심받는 종목 달라질 수 있어”

증권업계는 주주환원책과 호실적을 바탕으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다수의 대형 증권사들은 일찌감치 ‘1조 클럽’을 점찍어뒀고 중소형 증권사들도 체질개선을 통해 반등에 시동을 걸고 있다.

현재 증권사 중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곳은 미래에셋증권과 키움증권, DB금융투자, 유안타증권, NH투자증권 등 5곳에 불과하지만 실적이 뒷받침되면서 증권주를 전체적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특히 대형사는 리테일과 기업금융(IB) 사업 둘 다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어 내년에도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기대된다.

키움증권은 자기자본이익률(ROE) 15%, 주주환원율 30%,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이상을 3개년 중기 목표로 설정했다. 최근에는 보통주 1주당 현금 7500원을 지급하는 결산배당을 결정해 배당을 크게 확대했다. 배당금 총액은 지난해(881억원)보다 2배 증가한 2057억원이다.

미래에셋증권은 2026년까지 ROE 10% 이상, 주주환원성향 35%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사업에서 세전이익 5000억원 이상 창출하고 2030년까지 자사주 1억주 이상 소각할 예정이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DB금융투자가 밸류업 계획을 발표했다. DB금융투자는 △ROE 10% 이상 달성 △주주환원율 40% 이상 유지 △업종 평균 PBR 상회 등을 주요 목표로 설정했다.

향후 3년간 별도 재무제표 기준 조정당기순이익의 최소 40% 이상을 주주환원에 사용해 5% 이상의 배당수익률을 유지하겠다고 밝혔고 이어 연말까지 65만주(약 39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이어 지난 10일 유안타증권도 △ROE 10% 이상 △주주환원율 35% △PBR 1배 등의 주주환원 강화 목표를 담은 밸류업 계획을 공시했다.

NH투자증권도 밸류업 예고공시에 이어 지난 19일 증권사 중 다섯 번째로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ROE 12% 확보 △PBR 1배 달성 △보통주 1주당 최소 500원 배당 등을 골자로 한다. 총주주환원율 목표는 밝히지 않았지만 NH투자증권은 이미 약 50%의 주주환원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3월에는 NH투자증권은 13년 만에 약 515억원 규모의 보통주 417만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최근의 정치적 요소가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른 동력보다 기업의 지배구조 변화 여력에 따른 주가 변동이 영향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은 축소됐으나 주가 하락에 따른 시가배당률이 높아지면서 배당주의 매력도가 높아질 수 있다”며 “만약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새로운 리더십 선출 국면으로 전환 시 밸류업보다 ESG(상법 개정안에 따른 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관심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정책은 올해까지는 주주환원과 배당주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가 됐으나, 상법개정과 지배구조 문제 등이 다시 부각되면 저평가 자산주, 지배구조 관련주로 밸류업 정책이 대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예슬 기자 / ruthy@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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