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 새어나가는 내부 비용 줄이며 ‘불황형 흑자’ 계속
이자비용만 4조 돌파 가능성…트럼프 정부 출범에 ‘첩첩산중’
朴 탄핵 이전보다 소비 심리↓…불안한 정치 상황에 소비 위축
가맹점 수수료 또 한 번 인하…올해 경영 상황 역시 ‘불안정’
연말연초 국내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저출생·초고령화 등으로 대한민국 성장 엔진이 점차 동력을 상실해 가던 와중에 ‘비상계엄’ 후폭풍에 이은 ‘탄핵 정국’과 맞물린 대혼돈 속에서 중심을 못잡고 있다. 이에 각 금융기업과 당국은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시장 점검과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행정·정책 공백에 따른 혼란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전문가들이 점치는 올해 경제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골드만삭스는 계엄 사태 이후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 하방 리스크가 커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우리 금융시장 체질이 충격완화 능력을 갖춘 만큼 통화 부양책을 통한 대응 여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2024년 금융권의 이슈 전개와 2025년 시장 전망과 과제를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2024년 카드업계는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조달비용 부담을 한 몸에 받았다. 금리가 높아지자 차주들의 상환 여력마저 약화되며 나날이 높아지는 연체율에 시달렸다. 부진한 업황에 카드사들은 모집비용이나 판촉비 등 새어나가는 비용을 틀어막으며 실적을 겨우 끌어올렸다.
특히 바이든 정부 막바지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의한 금리 하락이 3차례 연속으로 이어졌으나, 올해 초 출범할 트럼프 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기조가 이어질지는 미지수인 만큼 자금조달 상황이 여전히 보릿고개일 것이란 시선이다.
이미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금융위원회에서 또 한 번 가맹점 카드수수료를 인하한 만큼 올해 역시 카드업계의 경영 상황은 나아질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 비용 틀어막은 카드업계…내부 비용만 줄이며 겨우 실적 개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7개 전업 카드사(신한·현대·삼성·KB국민·롯데·우리·하나카드)의 2024년 3분기 순익 총합은 2조121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조78억원) 대비 5.68% 증가한 수준이다. 실적 개선폭은 각 카드사마다 차이를 보였으나, 카드업계는 불안정한 업황 속에서 대부분 전년 대비 개선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카드사들은 수익성 개선의 이유를 ‘비용 효율화’로 꼽았다. 업황 개선에 따라 이자마진이 생긴 것이 아닌, 마케팅비용이나 모집비용, 판촉비 등 새어나가는 비용을 틀어막으며 순이익을 끌어올린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달비용을 카드사에서 통제하기는 어려운 만큼, 모집비용이나 마케팅비용 등 내부적인 비용에서 효율화를 꾀하며 순익이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은 내실경영을 통해 혹시 모를 시장 악화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새어나가고 있는 비용들을 최대한 줄이며 비용 효율화를 추진한 점이 카드사의 실적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며 “보통 영업 수익이 늘어나면 관련 비용도 늘어나게 되는데, 그 비율이 수익 증가폭 만큼 늘지는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금리 장기화에 이자비용 천정부지…트럼프 신정부 출범에 조달 환경 ‘적색등’
지속되는 이자비용 부담에 카드사의 어깨도 무거워지고 있다. 특히 2024년 연말께는 카드업계의 이자비용이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7개 전업 카드사의 2024년 3분기 누적 이자비용은 총 3조425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조9136억원) 대비 17.57% 증가한 금액이다.
카드업계의 이자비용은 매년 큰 폭 증가하고 있다. 7개 카드사의 연간 이자비용을 살펴보면 △2020년 1조9059억원 △2021년 1조9285억원원 등 꾸준히 1조9000억원대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22년 들어 2조3722억원을 기록하며 첫 2조원 수준을 넘어서더니, 이후 2023년 연말께는 3조8267억원까지 오르며 4조원에 육박하는 이자 부담에 시달렸다.
특히 2024년 들어 7개 카드사의 이자비용은 매 분기마다 1억원 이상씩 증가했다. 3분기까지의 이자비용이 3조4000억원대를 넘어선 만큼, 2024년 연말께는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카드업계의 이자비용 부담이 늘어난 데는 길어진 고금리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수신기능이 없는 카드사의 경우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여전채 금리의 경우 시장금리의 영향을 받는 만큼,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며 카드사의 이자비용 또함 커진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0년 말 1.287%에 불과하던 여전채 금리(3년물, AA+ 기준)는 2021년 말 2.372%로 오르기 시작하더니, 2022년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에 따라 6%대까지 크게 뛰었다.
실제로 2022년 11월 한때 6.088%까지 올랐던 여전채 금리는 2022년 말에도 5.536%로 예년 수준을 크게 상회했다. 이후 지난해 말에는 3.821%까지 내려오더니, 올 12월 들어서는 3.1%대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다.
여전채 금리가 내려간 데는 시장 금리가 내려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최근 바이든 정부 막바지에 접어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의한 금리 하락이 이어졌다. 이에 국내 기준금리 역시 낮아지며 카드업계의 자금조달 환경 역시 개선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올해 초 출범할 트럼프 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기조가 이어질지는 미지수인 만큼, 카드업계 역시 자금조달 상황에 다시금 적색등이 켜진 상황이다.
실제로 연준은 이달 18일(현지시간) 통화정책결정회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포인트 낮은 4.25~4.50%로 조정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과 11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이다.
하지만 제롬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그 전에는 조정 국면이었으나, 지금은 그전과 다른 국면이라고 평가한다”며 “중립금리 수준은 모르지만, 중립금리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조치로 우리는 정책 금리를 정점 대비 1%포인트 내렸고, 이로 인해 연준의 통화정책은 상당히 덜 제약적”이라면서 “추가 조정을 고려할 때 더 신중해야 한다”며 통화정책 완화속도 조절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카드사의 자금 조달 창구인 여전채는 시장 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 완화는 국내 금리 인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만큼, 여전채 금리 인하 가능성 역시 희미해지는 실정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신정부 출범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높아질 수도 있고, 여전채 금리 역시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또한 달러 강세가 지속될 경우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인하폭을 줄일 수도 있는 만큼 카드사에 불리한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 비상 계엄·탄핵 정국 등 정치 불안까지…내수 불황 전망에 카드사 ‘울상’
고금리·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며 ‘불황형 대출’인 카드론 잔액이 역대 최고치를 지속 경신한 것은 물론, 카드사의 건전성 지표 개선 역시 지지부진한 모양새를 이어갔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9개 전업 카드사(신한·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BC·NH농협카드)의 지난 10월 말 카드론 잔액은 42조2202억원으로 집계됐다. 카드론 잔액이 42조원대를 돌파한 것은 집계 이후 처음이다.
가계 부채 누적에 따라 카드사의 건전성 리스크 또한 커지는 상황이다. 2024년 3분기 말 대환대출을 포함한 1개월 이상 연체채권비율(실질연체율) 평균은 1.65%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이 기간과 동일한 수준이다.
하지만 ‘회수 불가’ 채권 규모로 해석되는 고정이하채권(NPL)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NPL비율은 3개월 이상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연체돼 사실상 회수 가능성이 낮은 부실채권의 비율을 뜻하는 것으로, 카드사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로 사용된다.
카드업계의 3분기 말 NPL비율 평균은 1.18%로, 전년 동기(1.09%) 대비 0.09%포인트 악화됐다. 업계에서는 연체율이 잡힌 만큼 향후 NPL비율이 개선될 여력 자체는 있다고 봤으나, 단기간에 건전성 지표가 개선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여전히 업황이 좋지 않은 만큼 건전성 지표에 대해 면밀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바라봤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대선으로 향후 조달금리 상승 가능성이 있는 만큼 건전성 지표 개선이 불분명한 상황"이라며 "업계에서도 건전성 지표에 있어 면밀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카드사들의 건전성 관리 수준이 높고 대손비용도 충분히 쌓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건전성을 위험한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자영업자와 저신용차주 등의 상환여력이 저하되고,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에 따라 회수환경이 어려워짐에 따라 건전성 지표의 회복은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탄핵정국의 장기화 우려까지 더해지며 올 들어 지속된 내수 부진마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의 ‘1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0.7로, 전월보다 1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이미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심리지수는 2016년 10월 기준 102에서 탄핵 촛불집회가 시작된 11월 95.7로 떨어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인 12월에는 94.1까지 감소했으며, 이후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선고한 3월까지도 기준점인 100을 밑돌았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기준점 100을 넘어설 경우 소비심리가 낙관적임을, 100 이하일 경우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이미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기 이전인 11월 소비심리 지표가 아슬한 수준을 이어온 만큼, 12월 소비심리는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 가맹점 수수료율 또 한 번 인하…올해 사업 계획마저 ‘비상’
카드업계가 불안정한 업황을 이어온 가운데, 최근 이어진 카드수수료율 인하 또한 카드업계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월 17일 8개 전업카드사 대표와 만나 2025년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연매출 10억원 이하 영세·중소가맹점의 신용카드 우대수수료율을 기존 0.5%에서 0.4%로 0.1%포인트 낮춰주기로 했다. 또 연매출 10~30억원 이하 중소가맹점에는 0.05%p, 체크카드 수수료율은 모든 영세·중소가맹점에 0.1%p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가맹점 우대수수료율은 0.40~1.45% 수준으로 내려왔다. 적격비용 재산정제도를 도입했던 2012년 당시 1.5~2.12% 수준이었으나, 3년마다 수수료율 인하가 이뤄지며 더 이상의 인하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수준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아울러 현재 3년마다 이뤄지는 적격비용 재산정주기는 원칙적으로 6년으로 조정된다. 다만 대내외 경제여건, 소상공인·자영업자와 카드사의 영업·경영상황 등을 3년 마다 점검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당국은 지난 2012년부터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제도를 통해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운영과 관련한 적격비용에 기반을 둔 가맹점수수료 산정체계를 구축해 적용하고 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카드사의 △자금조달 비용 △위험관리 비용 △일반관리 비용 △마케팅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3년마다 가맹점수수료를 재산정한다는 것이 골자다.
가맹점수수료율의 지속적인 인하에 카드사의 본업인 가맹점수수료 수익 비중 또한 20%대로 내려앉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카드업계의 총수익 대비 가맹점수수료 수익 비중은 29.09%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9.66%)보다도 0.57%p(포인트) 줄어든 수준이다.
연도별로 보면 가맹점수수료 수익 비중의 축소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019년 말 35.81%에 달하던 총수익 대비 가맹점수수료 수익 비중은 이듬해인 2020년 말 35.16%까지 떨어졌다. 이후 2022년 31.85%까지 수직 낙하하더니, 2023년에는 30.24%로 30%대 선마저 위태로워진 것이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적격비용 재산정으로 가맹점수수료율이 인하됨에 따라 신용판매에서의 적자폭은 더욱 확대되며 카드사 부담 가중이 예상된다”면서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가맹점수수료율이 추가 인하되며 카드사의 2025년 업권 전망도 어두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카드업계도 어려운 상황인 만큼 겸영, 부수업무 확대 등 규제완화를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또 한 번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에 현업은 비상인 상황”이라며 “2025년도 계획을 짜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대책이 서질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드사들이 카드 상품을 출시할 때 금융감독원을 거쳐 출시하는데, 수수료가 내려가면 모든 카드 상품의 손익이 다 달라진다”며 “결국 수수료 인하에 따라 ‘혜자카드’ 단종 또한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지원 기자 / easy910@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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