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격랑 예고
하이브리드차·현지 생산능력·대중국 제재 반사이익 관건
현대차·도요타·GM·테슬라·BYD 적자생존 기로 설 전망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단행한 임원 인사에서 던진 메시지는 첫째도, 둘째도 ‘미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룹을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 송호성 기아 대표이사 사장을 필두로 한 삼각편대로 재편하며 미국통을 전진 배치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만큼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북미 시장 대응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미국 행정부 재출범의 여파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과점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현대차그룹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각자도생이 아닌 기존 전통 완성차 기업 또는 새로운 전기차 업체와의 협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유력한 대응 방안으로 지목된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미국에서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테슬라, 비야디(BYD)와 함께 적자생존의 기로에 설 것으로 관측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하는 전통 완성차 기업들의 내년 사업 성패를 가를 핵심 요건은 하이브리드차 경쟁력, 미국 현지 생산능력, 대(對)중국 제재 반사이익으로 요약된다.
먼저 전기차 전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하이브리드차가 생존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전기차 세액공제(보조금)를 없앨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차의 대체재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경쟁력 측면에서 현대차그룹은 일본 도요타와 함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즈에 따르면 도요타는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 248만8407대를 판매해 점유율 1위(35%)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34만6723대로 6위(5%)를, 기아는 31만2449대로 7위(4%)를 각각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를 돌파할 카드 중 하나로 일찌감치 하이브리드차를 낙점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의 차기 대표이사로 내정된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24 LA 오토쇼’를 찾아 “전동화는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지만, 그 과정에서 유연하게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하이브리드차(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수소전기차(FCEV)까지도 생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랜디 파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 CEO(왼쪽부터)와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 올라비시 보일 현대차 북미권역 제품기획 및 모빌리티전략 담당 전무, 사이먼 로스비 현대디자인센터장 전무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미국 LA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24 LA 오토쇼’에 참석해 아이오닉 9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최소 10%에서 최대 20%에 달하는 보편관세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미국 현지 생산능력 또한 중요하다. 해당 부문에서는 미국 GM이 상당한 우위에 있다. GM의 지난해 미국 내수 판매량은 260만여대로 현지 생산 물량이 약 77%인 200만대 안팎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전기차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조만간 완공되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판매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HMGMA의 전기차 생산을 시작했으며, 내년 1분기 완공 이후 하반기부터 하이브리드차도 생산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산업분석에서 “보편관세 10%를 적용하면 현대차·기아 합산 기준 영업이익률이 약 2.3%포인트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메타플랜트 캐파 증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의 증산을 고려하면 감익 영향은 장기적으로 1%포인트 이내로 축소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이 HMGMA의 연간 캐파(CAPA·생산능력)를 60만대까지 늘리고,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이 4만대씩 증산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보편관세를 적용받는 물량이 기존 115만대에서 향후 47만대로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서 오는 반사이익을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BYD가 중국 내수 판매와 가격 경쟁력 우위를 발판 삼아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무역장벽이 일부 기업들로서는 한숨을 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BYD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한 2010억위안(약 39조원)으로 테슬라(252억달러·약 35조원)를 분기 매출에서 처음 제쳤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이 지난달 24일 ‘2024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일본 랠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자동차>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과점 구도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각자도생보다는 영리한 협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중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래 모빌리티의 경우 연구개발(R&D), 생산공장 건설, 인프라 구축 등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데, 협업을 통해 윈윈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과 지난 한 달간 두 차례의 회동을 통해 수소 협력 의지를 다졌다. 지난 9월에는 메리 바라 GM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승용·상용 차량, 내연 기관, 친환경 에너지, 전기·수소 기술의 공동 개발·생산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도요타의 경우 BMW와 2013년부터 연료전지 구동 시스템 분야에서 협력해 왔고, 지난 9월에는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제휴를 맺었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온전한 레거시 자동차 업체는 현대차그룹, 도요타, GM 등 3곳만 남았으며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BYD를 더해 도합 5개 사가 최상위 그룹을 이뤄 경합을 벌일 것”이라며 “예전 반도체 산업에서 봤었던 과점 강화 현상이 자동차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3개 레거시 업체 간의 협업 확대가 향후 경쟁 구도 재편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며 “‘벼랑 끝 협력’인 상황이라 다들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위상 강화와 밸류에이션 확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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