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도체에 25% 혹은 그 이상 관세 부과 예고
4월 2일 상호 관세도 시행…관세 전쟁 본격화 초읽기
한국 대미 칩 수출에 타격…약 10억불 손해볼 수도
TSMC, 1000억달러 추가 투자 통해 관세 리스크 회피
위기의 삼성·SK, 미 현지 투자 늘려야 하나 ‘전전긍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해 25%의 관세를 매긴 데 이어, 반도체 등 주요 산업 부문에 대한 관세 부과가 현실화 될 조짐이다. 특히 4월 2일 ‘상호 관세’ 부과를 공식화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세 전쟁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미국에 수출되는 주요 품목에 관세가 매겨질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해 수출의존도가 큰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CEO스코어데일리는 트럼프발 관세대전이 반도체, 가전, 배터리 등 국내 주요 수출품목에 미칠 리스크를 점검하는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자 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정책과 함께 미국내 투자유치를 종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에 생산라인을 분산 배치하고 있는 주요 기업의 대응전략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에 25% 혹은 그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대미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 등을 두루 고려해 ‘상호 관세’도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발 관세폭탄 리스크가 점차 현실화 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SK에 관세가 매겨질 경우 그만큼 첨단 칩 가격이 높아지고 글로벌 시장 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정부, 업계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내달 2일 반도체 등 주요 산업 부문별 관세와 국가별 상호 관세 등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미 워싱턴 D.C. 연방 의사당에서 열린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수십 년 간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놓여 왔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관세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국가들은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관세를 부과해 왔고,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관세를 부과할 차례다”고 이를 공식화 했다.
특히 트럼프는 불공정 무역의 사례 중 하나로 한국을 언급하며, 미국이 한국에 군사적인 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에도 한국의 평균 관세가 미국보다 4배나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이 WTO(세계무역기구) 회원국에 부과하는 평균 최혜국 대우(MFN) 관세율은 13.4%로, 미국(3.3%)과 비교해 4배 가량 높다.
다만 한국은 2007년 미국과 체결한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대부분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다. 현재 대미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지난해 기준 0.79% 수준이다. 환급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사실상 미국에서 수입되는 대부분 품목의 관세가 0(제로)%인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에 따라 대부분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음은 언급하지 않은 채 “이런 시스템은 미국에 공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다음달 2일부터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만큼 미국도 같은 수준의 대응을 하는 상호 관세를 시행할 것이다”고 재차 경고했다.
비단 상호 관세 뿐만이 아니다. 반도체에 대한 직접적인 관세인 품목별 관세가 어느 수준으로 부과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시장 안팎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도체 관세가 25%나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18일 트럼프는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반도체 관세를 어느 정도로 부과할 것이냐는 질문에 “25%, 그리고 그 이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세는 1년에 걸쳐 훨씬 더 인상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상호 관세든 품목별 관세든, 국내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관세 폭탄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면서, 세계 메모리 칩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의 대미 수출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무협)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33억7000만달러 대비 3배 넘게 급증한 수치다.
K-반도체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미 정부의 대중 관세에 따른 반사이익 덕분이다. 앞서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산 반도체에 25% 관세를 적용했다. 지난해 5월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반도체 관세율을 50%로 끌어올렸다.
여기에 중국 전자 제품의 보안 문제도 한국산 반도체의 수출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실제 미국 내 주요 대학,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서버 구축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산에서 한국산으로 대거 교체한 바 있다.

AI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열풍도 한몫했다. 챗GPT 등 생성형 AI가 날로 고도화되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첨단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흐름에 수혜주로 부상한 제품이 바로 HBM이다.
HBM의 인기는 삼성·SK에 큰 호재로 작용했다. K-반도체는 글로벌 HBM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3년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삼성전자도 38%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삼성·SK의 점유율 합산은 91%로, 사실상 K-반도체가 전 세계 HBM 공급을 전담하고 있다.
한국산 반도체의 인기가 고공행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K-반도체의 경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보편 관세의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반도체 수출이 지금보다 4.7~8.3%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난해 기준 106억8000만달러에 달했던 대미 반도체 수출 규모가 최대 8.3% 줄어든 97억9356만달러로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발 관세 폭탄으로 약 10억달러(약 1조4463억원)의 수익이 사라질 수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삼성·SK가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미 현지에 반도체 생산 거점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관세 리스크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대규모의 대미 투자 카드를 제시했다.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에 무려 1000억달러를 추가 투자키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TSMC는 향후 짧은 기간에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최소 1000억달러를 새로 투자할 것이다”며 “신규 투자는 미 애리조나주에 5개의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고 말했다. 앞서 TSMC는 2020년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투자 규모를 650억달러로, 5배 넘게 확대했다.

TSMC의 대미 투자 확대는 관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미 정부 또한 TSMC의 추가 투자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덕분이라고 자평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TSMC가 이번에 미국에 투자한 것은 ‘반도체 지원법(CSA)’에 따른 보조금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때문이다”며 “그들은 관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 온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여러분은 트럼프 대통령의 힘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TSMC가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굴복, 반도체 업체 중 처음으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그 후폭풍은 삼성·SK 등 K-반도체 진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선 TSMC 처럼 대규모의 대미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놔야 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K-반도체 진영은 북미 대관 담당 등을 총동원해 현지 동향을 면밀히 살펴보며 기업에 미칠 영향 등을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이후 상황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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