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AI 훈풍 최대 수혜주…삼성·SK 실적 고공행진
1조달러 규모 세계 반도체 시장 키플레이어는 역시 HBM
‘AI 메모리 투톱’ SK·삼성, 6세대 ‘HBM4’ 패권 확보 치열
전 세계를 휩쓴 AI(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AI 메모리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K-반도체는 지난해 AI 칩 특수를 제대로 누리며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K-반도체를 부양한 AI 훈풍은 올해 더 거세게 불 전망이다.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를 필두로 AMD, 구글 등 주요 빅테크가 앞다퉈 첨단 AI 칩 출시를 예고하면서, 차세대 AI 메모리인 ‘HBM4’를 비롯해 HBM 수요가 치솟을 전망이다.
12일 시장조사기관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시장 규모 전망치는 7722억4300만달러(약 1124조7719억원)로 추정됐다. 이는 2024년 6305억달러 대비 22.5% 증가한 수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의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WSTS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2024년 대비 무려 27.8%나 성장할 것으로 관측됐다.
메모리 시장의 황금기를 주도한 품목은 AI 시대 핵심 메모리인 HBM이다. WSTS는 지난해 HBM 시장 규모가 2024년 대비 무려 81%나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메모리 분야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성장률이다.
HBM이 견인한 메모리 호황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20조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2024년 같은 기간 12조1661억원 대비 무려 208.2% 급증한 수치다. 당초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익 전망치를 17조원대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실제 영업익은 이보다 3조원 가량 더 높았다.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분기 영업익 20조원 달성에 성공했다. 아울러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이어지던 지난 2018년 3분기 17조5700억원 이후 7년여 만에 역대 분기 영업익 최대 기록도 경신했다.
삼성전자가 사업 부문별 세부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선전이 전체 실적을 밀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 업계는 DS 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익 전망치가 16조원 내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4분기 전체 영업익 20조원 중 80%를 DS 부문에서 벌어 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해 3분기 실적만 봐도 SK가 이미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수혜를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3분기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11조383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조300억원보다 62%나 늘었다. 이로써 SK하이닉스는 창사 이래 사상 최대인 11조원이 넘는 영업 흑자를 기록하며 ‘분기 영업익 10조 클럽’ 입성에 성공했다.
K-반도체는 올해도 고속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WSTS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시장 규모는 9754억6000만달러(약 1420조9526억원)로 추정됐다. 1조달러에 육박하는 초대형 시장이 도래하는 것이다.
장밋빛 전망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은 역시 HBM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지난해 346억달러 대비 58% 증가한 546억달러(약 79조5850억원)로 예측됐다.
HBM에 대한 낙관론이 제기된 것은 올해 주요 빅테크를 중심으로 치열한 AI 반도체 경쟁이 촉발되기 때문이다. 첨단 AI 칩 구동에 필수인 HBM의 수요 또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 AMD, 구글 등 주요 빅테크는 급성장하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AI 칩 신제품을 앞다퉈 공개하고 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차세대 슈퍼 칩 ‘베라 루빈(VR)’을 전격 공개했다.
CPU(중앙처리장치) ‘베라’ 36개, GPU(그래픽처리장치) ‘루빈’ 72개로 구성된 ‘베라 루빈 NVL72’는 기존 ‘그레이스 블랙웰(GB)’ 기반 제품보다 추론 성능이 5배 향상됐다. 반면 토큰당 비용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고, 모델 훈련에 필요한 GPU 수도 4분의 1로 줄였다. 이에 고객사들은 기존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대규모 AI 모델을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황 CEO는 “우리는 단 1년도 뒤처지지 않고 매년 컴퓨팅 기술 수준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쯤 생산에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현재 베라 루빈의 본격적인 양산 단계에 진입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VR 기반 제품은 올 하반기께 시장에 출시될 것이다”고 예고했다.
경쟁사인 AMD의 리사 수 CEO도 ‘CES 2026’ 기조 연설에서 차세대 AI 데이터센터 랙 ‘헬리오스’를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헬리오스는 최초 공개된 차세대 GPU ‘인스팅트 MI455’ 72개와 데이터센터용 CPU ‘베니스’ 18개를 하나로 조립했다.
수 CEO는 헬리오스에 대해 “세계 최고의 AI 랙이다”며 “단순한 서버 랙이 아닌 ‘괴물’이다”고 소개했다.
AI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등판한 구글 덕분에 HBM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란 낭보도 이어졌다.
구글은 지난해 11월 AI 모델 ‘제미나이 3.0’을 출시했다. 제미나이 3.0은 AI 챗봇 평가 사이트 ‘LM아레나’에서 멀티모달 처리 속도와 정확성 등이 오픈AI ‘챗GPT’ 등 기존 AI 모델들을 크게 뛰어 넘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글이 압도적인 성능을 갖춘 AI 모델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자체 개발에 성공한 AI 반도체 TPU(텐서처리장치) 덕분이다.
TPU는 구글이 AI 모델 연구에 속도를 내던 상황에서, 기존 CPU와 GPU만으로 AI 서비스 확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위기감 속에 만든 AI 전용 칩이다. 딥러닝 학습과 추론에서 반복되는 행렬 연산에 특화된 AI 반도체로, 그래픽 처리나 범용 연산을 위한 불필요한 회로가 제거돼 전력 효율성이 높다. 가격도 엔비디아 AI 칩 대비 절반 수준이어서 압도적인 비용 효율성을 자랑한다.
이렇듯 올해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AMD의 헬리오스, 구글의 TPU 등 첨단 AI 반도체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K-반도체가 큰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출하량 기준 지난해 2분기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무려 62%에 달했다. 삼성전자는 17%를 기록했다. 이로써 K-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은 무려 79%나 됐다. 사실상 전 세계에 공급된 HBM 5개 중 4개는 ‘메이드 인 코리아’인 것이다.
삼성·SK의 HBM 리더십은 차세대 HBM4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삼성 HBM4은 엔비디아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지난해 말 삼성전자를 방문해 HBM4에 대한 SIP(시스템인패키지) 테스트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이 자리에서 엔비디아는 삼성 HBM4가 구동 속도와 전력 효율 측면에서 메모리 업체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과를 냈다는 결과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iP는 여러 개의 칩, 컴포넌트 등을 하나의 시스템 반도체로 집적하는 첨단 기술이다. 이에 SIP 테스트는 속도, 전력 효율, 발열, 신호, 안정성 등 반도체 성능을 종합적으로 검증하는 최종 단계로 평가된다.
SK는 올해 CES에서 가장 주목 받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 부상했다. 경쟁사보다 앞서 HBM4 16단 48GB를 최초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해당 HBM 제품은 업계 최고 속도인 11.7Gbps를 구현한 HBM4 12단 36GB의 후속 모델로, 고객사 일정에 맞춰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 HBM4 시대가 본격 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HBM4 분야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K-반도체가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삼성·SK의 전 세계 HBM 시장 내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첨단 AI 반도체 각축전 속 차세대 HBM4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라며 “HBM 리더십을 발판 삼아 HBM4 분야를 주도하고 있는 삼성·SK는 전 세계 HBM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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